‘황태자’ 서 ‘황제’ 로… 수려·담백해진 임윤찬, 베토벤의 우주 탐색
건반 위서 질주하던 모습과 달리
한층 여유롭게 베토벤 황제 연주
악장 내에서 수시로 분위기 전환
박자와 ‘밀당’ 하며 음악 맛 살려
서울시향은 말러 교향곡 선보여
츠베덴의 강점 ‘핀셋지휘’ 눈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엔 매번 성장을 목격하는 희열과 감동이 있다.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임윤찬에게 놀란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팔다리가 훌쩍 길어진 듯한 겉모습만큼 한층 여유로워진 그의 태도. 그리고 한 악장 내에서 수시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자유자재로 드라마를 만드는 연주 방식이다.
도전과 패기란 말이 어울렸던 천재 ‘소년’은 차분하게 베토벤이 그린 ‘우주’를 탐색하며 수려하고 담백하게 악상을 펼쳐나가는 정상급 ‘청년’ 연주자로 발돋움해 있었다.
임윤찬은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객석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었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연주회에 맞춰 입은 검정 연미복에 하얀색 나비넥타이 차림이었다. 연주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광주시향과 발매한 ‘베토벤·윤이상·바버’ 음반에서 녹음한 곡이자 2022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와 한 무대에 섰던 곡이다. 임윤찬에게도, 임윤찬의 연주를 듣는 이날 관객들에게도 처음은 아니었을 친숙한 곡이다.
하지만 이날 연주는 익숙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1악장이 시작되고 오케스트라의 화음에 이어 곧바로 피아노가 질주하는 게 보통이고, 질주는 임윤찬의 장기다. 그런데 이날 임윤찬은 보다 차분하고 담백하게 음을 눌러가며 좌중을 집중시켰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고, 음색은 맑고 청아했다. 악장 내에서도 톤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다 보니 1악장은 ‘씩씩’, 2악장은 ‘서정’처럼 도식적으로 나뉘지 않았다.
임윤찬은 음악을 보다 세분화해 다양한 악상에서 새로운 노래와 드라마를 찾고 또 찾는 듯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지속해서 이뤄졌고, 수시로 노래가 만들어졌다. 이날 임윤찬의 덩실덩실 어깨춤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방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들려주려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 템포 조절이나 셈여림에 따른 강약 조절보다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무기를 터득한 것처럼 보였다. 미처 지나쳤을 음악의 가능성을 성실하게 찾는다는 점에선 ‘심마니’의 면모도 느껴졌다.
3악장에서의 폭발적이고 힘찬 질주에선 임윤찬의 특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다만 여기서도 강공 일변도는 아니었다. 박자를 적극적으로 ‘밀당’(밀고 당기기)하며, 보다 촘촘하게 음악의 맛을 살렸다. 임윤찬은 지난해 이 곡에 대해 “예전에는 너무 화려하게만 들렸던 곡이라 이상하게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곡이었다”며 “최근 (코로나19로) 인류에게 시련이 닥치고, 매일 방 안에서 연습하며 다시 ‘황제’를 들었을 때 베토벤이 꿈꿨던 유토피아, 혹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전 연주가 ‘황태자’에 가까웠다면, 이번 연주는 ‘황제’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연주가 끝나고 관객에게 인사한 뒤, 총총걸음으로 서둘러 무대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선 특유의 풋풋함이 여전했다.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2부 순서인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연주에서 보다 힘을 발휘했다. 츠베덴 음악감독 체제의 야심 찬 프로젝트인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의 첫 시작이란 공연의 의미 때문이었을까. 서울시향은 ‘칼군무’를 추듯 시종일관 군기 잡힌 모습으로 최선의 연주를 들려줬다. 녹음은 26일 롯데콘서트홀 공연까지 양일간 진행된다.
츠베덴의 강점인 풍요로운 사운드와 의외의 장점인 섬세한 핀셋 지시가 빛났다. 풍부한 사운드를 뒷받침하는 현악기들이 명품 조연이었다면, 오보에와 클라리넷, 플루트, 그리고 호른 등 관악기는 츠베덴의 지시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주인공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다만 단조로 패러디해 장송곡처럼 느껴지는 동요 선율과 유행가 같은 선율이 혼재되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3악장에선 상대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 곡의 마지막, 모든 악기가 함께 공격을 외치며 혼신을 다해 달려나갔고, 악단의 강렬한 기세에 관객들은 열띤 호응으로 답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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