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별이 詩가 됐다… ‘인간 정호승’ 의 한 컷[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4. 1.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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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에 걸려 도합 17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았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고백하더니 "시라는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다짐한다.

한국 대표 서정시인, 전 세대에 사랑받는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시에 깃든 시인의 일상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일깨워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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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 지음│비채

“세 차례에 걸려 도합 17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았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고백하더니 “시라는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다짐한다. 한국 대표 서정시인, 전 세대에 사랑받는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어느덧 등단 50년을 넘긴 정 시인은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라 했다. 직접 가려 뽑은 시 68편과 그 시에 얽힌 이야기 68편을 엮은 신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그 결과물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 정 시인의 아름다운 시들을 읽으며 새삼 탄복하게 하는 책은, 시를 쓸 당시의 사연과 심정까지 오롯이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시인은 늘 시와 산문이 ‘한 몸’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 둘이 함께 엮인 책을 소망했다. 그렇게 출간된 것이 전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이는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바로 그 두 번째 ‘시가 있는 산문집’인 셈이다. 형식이나 구성은 전작과 비슷하나, 신간은 ‘시인 정호승’ 너머에 있는 ‘인간 정호승’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시인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을 시와 함께 돌아보며 고해하듯 깊은 내면을 털어놓는다. 청춘에 겪은 아픈 이별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 1970년대를 살던 청년 시인으로서 어떤 결의를 했는지, 서울의 밤을 바라보던 가난한 가장의 심경은 어땠는지….

고 김수환 추기경이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한 말에서 빌려온 책의 제목처럼 가만하게, 그리고 먹먹하게 우리의 마음을 만진다. 시에 깃든 시인의 일상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래서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일깨워주며 말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시인의 삶이 문학적 형태로 응축된 책에는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 온 20여 컷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군 복무 시절, 그리고 그리운 부모님 등 아끼고 사랑했던 얼굴들이 시를 음미하고, 사연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사랑과 고통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이 산문이라면 사랑은 시라고 말하는 정 시인의 인생론과 문학론이 빛바랜 사진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572쪽, 1만8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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