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19세기 전염병… 병상에서도 써내려간 역작[출판평론가의 서재]

2024. 1.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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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세상을 떠난 서양사학자 이영석 선생은 평소 "일류대학 출신도 아니고 국내파 학자로 지방 중소대학의 교양과목 선생으로 30년을 지내다 퇴직했다"며 겸손해했다.

독일 출신 야코브 발터는 나폴레옹 군대에 무려 세 번이나 징집당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전염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제 공조를 전개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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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평론가의 서재

2022년 2월 세상을 떠난 서양사학자 이영석 선생은 평소 “일류대학 출신도 아니고 국내파 학자로 지방 중소대학의 교양과목 선생으로 30년을 지내다 퇴직했다”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한평생 성실했던 학문적 자세는 후학들에게 하나의 빛과도 같았다.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푸른역사)은 이영석 전 광주대 명예교수가 타계 전 몇 년 사이 발표한 연구 논문들을 모아 보완한 “에세이집 형태의 연구서”로, 병상에서 일기를 적으면서 완성한 유작이다.

1부에서는 ‘전쟁과 수난’을 주제로 나폴레옹 전쟁과 양차대전은 물론 피털루 학살과 잘리안왈라 공원 학살, 5·18 광주 등 국가폭력을 상세하게 다룬다. 독일 출신 야코브 발터는 나폴레옹 군대에 무려 세 번이나 징집당했다. 러시아 원정기인 1812년, 세 번째로 징집당한 발터는 “퇴각하는 길에 갖가지 고생을 겪었”는데, 귀국 후 석공 일을 하며 자신의 전쟁 기록을 남겼다. 특이한 것은 발터의 회고록이 “이상하리만큼 냉정하고 차분”하다는 점이다. 국가나 조국에 대한 헌신, 흔한 나폴레옹에 대한 숭배, 러시아군에 대한 적대감 등은 보이지 않는다.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오히려 “연민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는 발터의 “아래로부터의 바라보는 시선”은 어쩔 수 없는 “프랑스의 외부, 라인연방에서 동원된 젊은이의 시선”일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한다.

2부에서는 ‘근대의 성취, 근대의 한계’를 주제로 전염병, 노령연금 등 우리 시대에도 화두인 문제들을 다룬다. 19세기 유럽 사회변화를 나타내는 핵심어로 저자는 “산업화와 교통혁명”을 꼽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전염병도 세계 각지로 퍼졌다. 인도 벵골 지방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선박과 육로 여행자들을 따라 전 유럽으로 퍼졌다. 황열병, 페스트도 극성이었지만 콜레라는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주기적으로” 유럽 사회를 덮쳤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르 롸 라뒤리는 이를 “세균의 공동시장(common market of bacilli)”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전염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제 공조를 전개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의 일이다. 아메리카 각국까지 합세해 19세기 후반부 ‘국제위생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고, 1907년 ‘국제공중위생국’ 창설로 이어졌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국제위생회의 활동과 국제공중위생국 창설에 이르는 과정은 오늘날 세계적 대유행병의 창궐을 맞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한다.

3부 ‘동양과 서양’은 서로를 바라보는 데 근원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여러 여행기와 황화론(黃禍論) 등을 통해 보여준다. 짧은 글로 이영석 교수가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에서 보여준 연구의 치밀함을 모두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뿐 아니라 이영석 교수의 모든 책들이 일독의 가치가 있음을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아시리라 믿는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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