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한국과 조선의 전쟁은 내전? 국제전?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영문으로 보면, 조선은 한국의 ‘Republic of Korea’ 앞에 ‘Democratic People‘s(인민민주주의)’를 붙인다. 외국인에게는 다른 나라인 듯 같은 나라같이 비치는 대목이다. 남북은 각각 남한(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 남조선과 북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같은 민족으로 같은 역사를 지닌 남과 북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외세에 의해 분단되면서 79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유럽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서게르만족 계열의 독일어권에 속하는 동족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는 표준 독일어와 유사하고, 양국 사람들이 만나면 같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이들 나라는 독일 민족이라는 같은 종족임에도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별다른 충돌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외세에 의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이념적 문제로 대립하면서 전쟁 위험까지 안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는 대조된다.
2018년 한반도에도 평화와 번영의 부푼 꿈을 꾼 적이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의 열정은 급격하게 식어버렸다. 북·미는 물론 남북 대화도 끊어졌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국가 관계라고 규정한 것이다.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책은 남북관계 개선을 더욱 어렵게 했다. 급기야 북한은 그동안의 남북 간 합의를 모두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한반도의 위기는 비단 남북 관계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세계의 신냉전 체제가 한반도에도 미치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강경 대치 국면이 됐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러 관계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배경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하면서도 중국,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중시하면서 한반도 주변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을 기조로 삼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북·중·러 결속을 불러왔다.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립 격화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한·중, 한·러 간 경제교류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해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됐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라고 한 것은 어찌 보면 동족 간에는 전쟁을 하지 않겠지만, 적대국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전략도 긴장고조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국방부 장관이 연평도 등에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일부 외신도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한국에 투자한 자본들이 빠져나가는 혼란까지 야기했다.
2024년 들어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북한은 북측 서해상으로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보다 앞서 14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중거리급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열흘 만이다. 문제는 북한의 도발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이는 ‘조선의 적대국 한국’에 대한 경고성 도발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적대적으로 맞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함께 통일을 꿈꾸는 ‘동일 민족 Korea’가 아니라 사이가 매우 나쁜 국가 관계가 되어 버렸다. 비우호적 관계가 아닌, ‘주적 관계’가 됐다.
미국에서도 북한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미국이 매우 부정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도 “2010년 연평도 포격을 넘어서는 공격을 할 의도가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적대적 노선으로 대남 정책을 변경한 이후 북한이 향후 몇 달 내에 치명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등 주변국에서는 한반도 상황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실제로 남과 북이 접해 있는 육지와 바다, 하늘은 언제든지 서로를 겨누고 있는 막강한 살상 무기의 전장(戰場)이 될 수 있다. 이미 74년 전, 전면전을 벌인 참담한 역사도 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다. 물론 그사이 대화와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적대적 관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갈수록 한반도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나아가 2024년의 한반도는 ‘한국과 조선’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대전환 시대를 맞았다. 아주 고약한 ‘다른 나라’가 인접해 있는 꼴이 됐다.
이제 남은 문제는 무엇보다 양국이 전면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6·25에 이어 두 번째 ‘내전’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한국과 조선 간에 전쟁은 ‘국제전이 된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을 생각한다면, 전쟁의 성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면한 갈등을 조정하고 한반도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남북 간 평화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괜한 힘자랑을 하거나, 감정적 대응으로 파탄을 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절한 상황관리와 주변국과의 협력 외교가 필요하다. 그래야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고, 우리의 삶도, 우리의 미래도 지킬 수 있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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