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 의장 “국가적 재앙 저출생 문제 해결하려면 사고의 대전환 필요”
"올해 서울시의회 의장으로서 최고 관심사는 저출생 문제 해결입니다. 국가적 재앙 수준인 심각한 저출생 문제에서 서울시도 예외가 아니죠. 시민이 겪는 출산·육아·교육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서울시의회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2024년 의회 운영과 의정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22년 7월 김 의장 취임 이후 서울시의회가 각종 정책 제안과 예산 심의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예산심사 '3불(不) 원칙'을 천명하고 서울 시정의 비효율에 메스를 댄 것이 대표적이다. 불요불급하거나, 집행 목적이 불분명하고, 사업 효과가 불투명한 정책·예산을 퇴출함으로써 시정을 효율화하자는 취지다. 최근에는 서울시의회 조례안 발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주간동아가 1월 22일 서울 중구 시의회 청사에서 김 의장을 만나 시정 현안과 구상에 대해 들었다.
"‘예산심사 3불 원칙'으로 혈세 아껴"
지난해 서울시의회 의정 활동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핵심은 시민의 혈세를 아끼고, 그간 누적된 시정의 일부 비정상적 행태를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시의회가 가진 예산심의·확정권과 자치 입법권을 총동원해 예산 낭비나 불합리한 행정을 정상화했다. 구체적 사례를 들자면 교통방송(TBS)에 대한 세금 지원을 중단하고, 서울시립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반값 등록금' 정책 실패를 바로잡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을 막고자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를 폐지한 점도 기억에 남는다."
신년사에서 "과감한 저출생 대책으로 '서울의 존속'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경제력과 인구가 집중된 서울시의회 의장으로서 저출생 대책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반세기 동안 서울 인구구조는 삼각형에서 항아리 형태로, 다시 역삼각형으로 변화했다. 서울 전체 인구가 줄고 저출생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고령자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서울이 활력과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고(思考)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적 재앙에 가까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만큼 기존 정책 답습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저출생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핵심은 두 가지라고 본다. 지나치게 비싼 집값과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큰 비용 부담이다. 부부가 결혼한 뒤 노력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신혼부부에게는 거의 무료에 가깝게 주택을 공급하고, 아이를 양육할 때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현금 및 현물 지원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마중물로 다자녀 기준을 기존 3명에서 2명으로 낮추고, 지원 연령을 13세에서 18세로 상향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저출생 대책 지원 대상을 늘리는 이 같은 행보에 전국 다른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도 뒤따르고 있다."
"저출생 해결 첫걸음은 공교육 정상화"
김 의장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 조건이 공교육 정상화라고 본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니 학부모 입장에선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토로하는 양육 부담에서 사교육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이것이 신혼부부가 출산을 꺼리는 주된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김 의장은 공교육 정상화의 첫발로 기초학력 제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서울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를 수립함에 따라 지난해 11월 서울 210개 학교 4만5000여 명 학생이 기초학력평가를 받았다.기초학력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초학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학생마다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효과적으로 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 교육부가 부분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고교 2학년의 영어 기초학력 미달률은 3.6%였는데 이듬해 8.6%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수학 기초학력 미달률도 9%에서 13.5%로 급등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기초학력이 낮아졌다는 것 자체는 인식하면서도 구체적인 원인 분석과 학생별 지도를 위한 전제인 정확한 진단에는 소홀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기초학력평가 부작용으로 '줄 세우기' 식 교육을 우려한다.
"정말 답답한 부분이다. 지난해 마련된 기초학력평가는 특정 과목별 시험이 아닌, 문해력과 수리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학교·학생의 줄 세우기가 결코 아니다. 부족한 기초학력을 정확히 진단해 교육권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기초학력은 학생의 인권 문제다. 학생이 초중고 각 교육과정에서 학력과 교양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그 후유증은 평생 갈 수밖에 없다. 교육정책 혼선으로 기초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졸업한 학생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소중한 인권을 침해받은 셈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는데.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현장에서 학생 생활지도가 어렵다는 점이다.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교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4.1%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교총이 지난해 7월 25~26일 교원 3만2951명을 상대로 실시). 대다수 열정적인 교원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했다가 자칫 학생인권조례로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일까 우려하고 있다. 성장기 학생에게 올바른 생활지도, 인성지도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교사·학생·학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건강한 학교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기존 학생인권조례는 폐지하고 새로운 조례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시, TBS 조례안 통과 후 후속 조치 안 해"
시민의 관심은 서울시의회가 추진한 각종 '서울 시정 개혁' 방안이 약속대로 현실화됐는지 여부에도 쏠린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시의회가 2022년 11월 15일 가결한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TBS 조례안)이다. TBS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게 뼈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2일 서울시의회는 TBS가 서울시 출연기관 지정에서 해제될 때까지 직원 급여와 퇴직금 등 정리를 위해 조례 폐지를 5개월간 유예하는 조례 개정안을 의결했다. 서울시가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뒤늦게 TBS 조례 개정안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마무리하면서 김 의장은 "TBS 세금 지원 중단 조례안이 의결되고 1년이 넘도록 서울시가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데다, 이번 정례회 조례안 제출 시한을 넘겨서 TBS 조례 개정안을 낸 행태가 심히 유감스러우나, 묵묵히 일해온 TBS 직원들의 생계 등을 감안해 대승적 견지에서 조례 개정안 심의 등을 허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서울시가 지난해 막바지 TBS 조례 개정안을 냈는데.
"지난해 9월 서울시가 느닷없이 담당 과장 명의로 'TBS 지원 폐지 시점을 미뤄달라'며 서울시의회 의장 앞으로 문서 한 통을 보내왔다. 서울시장은 조례 제·개정안을 시의회에 낼 권한이 있다. 만약 조례 폐지 시점을 더 유예할 필요가 있다면 시장이 직접 안건을 내면 될 일이다. 일개 과장 명의로 시의회에 문서 한 통을 달랑 보낸 것은 그 내용이나 행태 모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자 서울시가 뒤늦게 시의회에 TBS 조례 개정안을 내고, 행정안전부에 미디어재단 TBS의 출연기관 지정 해제를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 서울시는 앞선 유예 1년 동안 사실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시험시간 내내 딴짓을 하다가 막판에 몰아쓰기를 하더니 추가 시험까지 치르게 된 꼴이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서울시가 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올해도 서울시의회 앞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 해 의정 방향을 묻는 질문에 김 의장은 "지금까지 해온 서울시의회의 중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늘 강조하는 3불 원칙에 입각한 예산 재배치로 불요불급한 예산은 줄이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중요 정책에는 과감히 예산을 편성할 것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 사회적 약자의 삶이 고단해졌다. 민생 안정에 주안점을 두고 의정 활동을 펴고자 한다. 최근 큰 피해를 낳은 일본 니가타현 지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시민안전을 위한 대비책 마련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시민안전에 관한 정책과 예산은 과한 게 모자란 것보다 훨씬 낫다. 시의회 차원에서도 예산 편성은 물론, 현장점검을 통해 시민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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