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도 재능일까···현대 사회의 ‘신앙’을 묻다[책과 삶]
신앙
무라타 사야카 지음 | 김재원 옮김 | 은행나무 | 180쪽 | 1만5000원
속는 것도 재능이라면 ‘나가오카’는 그 재능이 영 없는 사람이다. 속을래야 속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400엔짜리 스킨과 성분이 똑같은 화장품을 1만엔 주고 사는 동생을 이해할 수 없다. 친구가 산 명품 가방과 비슷한 것을 재래시장에서 3000엔에 살 수 있다는 사실도 그는 잘 안다. 나가오카는 가족과 친구가 속지 않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로 이들을 구하려 한다. “그래서 원가가 얼만데?”
나가오카는 점점 혼자가 됐다. 처음엔 고마워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그의 계속된 지적에 점점 어두워졌다. 나가오카는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에 돈을 쓰면서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나가오카는 ‘잘 속아 넘어가는 재능’을 연마해보기로 다짐한다. 그때, 어딘가 어수룩했던 동창생 ‘이시게’, 착실했던 ‘사이카와’가 나가오카에게 사이비 종교를 시작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소설집 <신앙>의 표제작 ‘신앙’은 동창의 제안을 받은 나가오카가 사이비 종교의 일원 대신 ‘속는 쪽’, 그러니까 신도가 되려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무언가를 믿는 것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믿을 줄 아는 재능’이 있어서라는 소설의 시선은 현대 사회에서 조롱받는 ‘믿는 행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편의점 인간>을 쓴 무라타 사야카의 신작이다. 표제작 ‘신앙’을 비롯한 단편소설 6편과 에세이 2편이 함께 묶인 구성이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들을 ‘무언가를 깊이 믿는 사람, 믿고 있던 세계의 붕괴’라는 큰 줄기로 엮었다.
책에는 가전제품 코너에서 자신의 클론을 구입해 각종 노동을 전가할 수 있는 미래 사회나 정자은행을 통해 여자친구들끼리 자녀를 계획하는 삶, ‘생존율’에 모든 삶이 지배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익숙한 SF 장르의 설정도 색다르게 전개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톡톡 튀면서도 언젠가 일어날 법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날카로운 질문의 화살을 쏘아 독자가 세상의 균열을 인식하게 한다.
‘다른 존재들’에 대해 쓰는 작가답게 에세이 ‘기분 좋음이라는 죄’에서는 ‘다양성’에 관한 자신의 무지를 반성한다. 일본 사회가 말하는 다양성이란 사회가 친 울타리 안에서만 인정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상한 사람을 이상한 그대로 사랑”하자고 말한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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