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억 특급대우' 국가대표 에이스는 왜 FA를 포기했나 "난 KT와 닮았다"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예비 FA 최대어로 꼽혔던 선수는 그렇게 영원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기로 결심했다.
KT가 마침내 창단 첫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주인공은 바로 국가대표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33). 고영표는 KBO 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투수 중 1명으로 꼽힌다.
KT 위즈는 25일 "투수 고영표와 5년 총액 107억원에 비FA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107억원 중 보장 금액이 95억원이며 인센티브는 12억원에 달한다.
KT는 "고영표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선발승을 따냈고, 이 기간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 15.87, 퀄리티스타트(QS) 63회를 기록하는 등 각 부문 1위에 오르며, KBO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매김했다"라면서 "또한 고영표는 구단 역대 최다 경기 선발 등판(127경기), 최다승(55승), 최다 이닝(920⅔이닝), 최다 완봉승(4회) 등 각종 부문에서 구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투수이다. 이에 KT는 고영표와 구단 최초로 비FA 다년계약을 맺었다"라고 고영표와 비FA 다년계약을 맺은 배경을 설명했다.
나도현 KT 단장은 "고영표는 구단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투수진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선수다. 실력은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투수이기에 비FA 다년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앞으로도 에이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영표는 계약 직후 구단을 통해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주신 구단에 감사하다"라면서 "KT 창단 맴버로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팀이 우승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마운드에 오르겠다"고 말했다.
◆ "FA 시장에 나갈 수도 있었지만…" 고영표의 진심
당초 고영표는 올 시즌을 마치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예비 FA 최대어'라는 수식어도 따라 다녔다. 선발투수 자원이 귀한 KBO 리그에서는 고영표처럼 꾸준함을 갖춘 선수를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만약 고영표가 FA 시장에 나왔다면 여러 팀들의 경쟁으로 '영입 전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고영표는 FA 권리를 행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고영표는 25일 '스포티비뉴스'와의 통화에서 "KT는 신인 시절부터 함께했던 팀이라 팀에 대한 애정도 있고 원래 KT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FA 시장에 나가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었지만 KT에서 좋은 제의를 해주셨다. FA로 더 큰 대우를 받겠다는 욕심보다는 KT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라고 FA 대신 비FA 다년계약을 맺은 이유를 말했다.
"KT와 5년 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구단에서 나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앞으로 5년 동안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소감을 밝힌 고영표는 "KT는 나와 스토리도 비슷하고 닮은 점이 많은 팀이다. 나도 프로에 입단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성장을 하면서 KT라는 팀도 같이 성장했다. 작년에도 10등을 하다가도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10등을 해도 흔들림이 없는 이유는 그만큼 저력이 있고 덤덤하게 이겨내는 팀이기 때문"이라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KT는 지난 해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최하위로 시즌을 출발했음에도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고 한국시리즈 진출도 성공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LG에 1승 4패로 밀리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으나 올해도 KT는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거론된다.
고영표는 "나도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데 컨디션이 좋아서 스스로 기대가 된다. 새 시즌에도 KT가 어떤 역경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을지 궁금하다"라면서 2020년 KBO 리그 MVP 출신인 멜 로하스 주니어가 KT로 복귀한 것에 대해서도 "로하스는 대단한 시즌을 보냈던 타자다. 든든한 선수가 와서 기대된다"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영표가 KT와 비FA 다년계약 협상을 완전히 마무리를 짓기 전부터 협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샀다. 특히 KT 팬들은 고영표의 잔류를 간절히 바랐다.
"항상 한결 같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계약을 통해서 팬들이 나라는 선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계약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이 계시더라"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낸 고영표는 "앞으로도 그라운드와 그라운드 밖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행복을 나눠드릴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평범한 투수에서 리그 최고 '꾸준함의 상징'으로 거듭나다
KT는 KBO 리그 제 10구단으로 합류한 팀으로 2014년 퓨처스리그를 거쳐 2015년부터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다. 화순고-동국대를 졸업한 고영표는 2014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10순위) 지명을 받고 KT에 입단했다.
사실 고영표가 프로에 데뷔한 순간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KT의 창단 멤버로 합류한 고영표는 데뷔 첫 시즌을 퓨처스리그에서만 뛰면서 12경기에 나와 13⅔이닝을 던져 승리 없이 2패 6홀드 평균자책점 5.27을 기록했다.
KT는 마침내 2015시즌부터 1군 무대에 합류했고 고영표도 1군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중간계투로 뛰었던 고영표는 2015년 46경기에서 57이닝을 던져 3승 4패 평균자책점 5.68을 남겼고 2016년에도 53경기에서 56⅓이닝을 던져 2승 4패 5홀드 평균자책점 5.59을 기록했다.
고영표가 선발투수로 변신을 꾀한 것은 바로 2017년이었다. 25경기에 나와 141⅔이닝을 던진 고영표는 8승 12패 1홀드 평균자책점 5.08을 남겼다. 4월 29일 LG전에서 9이닝 6피안타 2사구 6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따내고 5월까지 3점대 평균자책점(3.53)을 유지하며 일약 돌풍을 일으켰으나 6월에 3패 평균자책점 8.67로 무너지면서 평균자책점이 5점대로 급등했다.
2018년에도 그랬다. 5월 24일 KIA전에서 9이닝 7피안타 1볼넷 1사구 11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냈음에도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고영표가 2018년에 남긴 성적은 25경기 142이닝 6승 9패 평균자책점 5.13. 결국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승선하지 못한 그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고 2021시즌에야 KT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고영표의 야구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침 KT도 2020년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 강팀으로 탈바꿈한 뒤였다. 고영표는 2021년 26경기에서 166⅔이닝을 던져 11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2.92로 뛰어난 투구를 펼쳤다. 개막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면서 기분 좋은 출발을 했고 6월에는 5경기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해내는 등 4승 1패 평균자책점 2.48로 맹활약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9월에는 3승 평균자책점 0.27로 눈부신 투구를 보여줬는데 9월 12일 SSG전에서 9이닝 7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KT는 고영표를 비롯해 윌리엄 쿠에바스~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배제성~소형준으로 이어지는 특급 선발투수진을 앞세워 타이브레이커 접전 끝에 삼성을 제치고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KT는 또 한번 결단을 내렸다. 한국시리즈에서 고영표를 중간계투로 활용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 사실 단기전에서는 선발투수 4명만 있어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다. 팀을 위해 중간계투로 변신한 고영표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에 나와 홀드 2개를 챙기고 평균자책점 3.86으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KT는 두산에 4전 전승을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 퀄리티스타트의 화신, 국가대표 검증도 완료
고영표는 2022년에도 승승장구했다. 개막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펼치면서도 2승 밖에 따내지 못했던 고영표는 6월 11일 롯데전에서 9이닝 5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으로 또 한번의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고 5월 31일 SSG전부터 8월 31일 두산전까지 개인 11연승을 달리는 놀라운 투구를 선보였다. 정규시즌 성적은 28경기 182⅓이닝 13승 8패 평균자책점 3.26. 10월 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13을 기록하지만 않았어도 2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 달성도 가능했다.
지난 해에도 고영표는 명불허전의 투구를 보여줬다. 4월 18일 SSG전부터 5월 12일 롯데전까지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플러스(QS+)를 작성했다. 이어 6월 6일 롯데전에서 7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한 것을 시작으로 8월 24일 KIA전에서 7이닝 6피안타 1볼넷 1사구 5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쾌투하면서 1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작성하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었다.
정규시즌에서 28경기에 나와 174⅔이닝을 던져 12승 7패 평균자책점 2.78을 남기며 KT의 플레이오프 직행을 이끈 고영표는 NC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홈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패하며 벼랑 끝에 몰린 KT를 구하는 귀중한 호투로 '에이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고영표는 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며 NC 타선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KT는 고영표의 호투를 발판 삼아 3차전을 이기며 기사회생했고 5차전까지 내리 승리를 따내면서 2패 뒤 3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고영표는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선발투수라는 중책을 맡았다. 잠실에서 열린 1차전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고영표는 6이닝 7피안타 2사구 3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호투했고 이는 KT가 1차전을 승리하는데 발판이 됐다. 비록 고영표는 5차전에 다시 나와 4이닝 7피안타 1볼넷 3탈삼진 5실점으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미 KT가 2~4차전을 내리 패하면서 분위기가 LG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였다.
KT는 지난 해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어려운 출발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2위까지 오르는 저력을 뽐냈다. 여전히 탄탄한 전력을 갖춘 KT는 올해도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팀으로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영표를 비롯해 쿠에바스, 웨스 벤자민으로 짜여진 1~3선발은 리그 최고 수준이며 신인왕 출신인 소형준도 팔꿈치 수술 후 복귀를 노리고 있어 다시 한번 막강 선발투수진을 구축할 기회를 맞고 있다.
고영표는 KBO 리그 뿐 아니라 국가대표로도 에이스로서 검증을 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일본과의 준결승전 선발투수 중책을 맡아 5이닝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고 지난 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첫 상대였던 호주와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나와 4⅓이닝 4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무난한 투구를 남겼다. 고영표가 지금처럼 '꾸준함의 상징'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투구를 이어간다면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그의 이름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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