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남긴 지문' 4분이면 추적 진단 완료

최지현 2024. 1. 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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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미래]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준기 교수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준기 교수(가운데). 서울 송파구에 소재한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내 연구실에서 제자들과 연구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혈액과 소변 '한 방울'로 동맥경화를 미리 확인하거나 방광암을 예측하는 진단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 중이다. 검사 시간 역시 평균 4분, 길어도 20분에 불과하다. 질환을 검사하고 진단을 받기 위한 환자의 불편이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진단이 빠르니 치료도 빠르게 시작할 수 있다. 소변이나 소량의 혈액을 이용한 비침습적 검사이기에 비용 부담 역시 줄어든다.

코메디닷컴은 이러한 진단법을 개발 중인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준기 교수를 만나 '병의 미래'를 들어봤다.

100년 전 과학이론, '의학 신기술'로 부상

김 교수는 의학을 공부한 임상 의사는 아니지만, 전공인 광학 분야를 기반으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의공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병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만큼 환자에겐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진단이란 병을 구별해내는 과정인데, 여전히 구별할 기준이 없는 질환도 상당히 많습니다. 환자들이 적은 시간만 아프고 빨리 건강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라만분광법'이란 이론을 진단 기술에 활용하고 있다. 라만분광법은 인도의 과학자 찬드라세카르 라만 경이 1928년 발표한 '라만효과'를 바탕으로 정립됐다. 라만 경은 이 발견으로 아시아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이를 쉽게 이해하자면, 물질이 가진 고유의 '지문'을 찾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질의 구조나 분자의 형태에 따라 '뱉어내는 에너지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질의 분자마다 고유의 에너지 값(라만 지문)이 일정하기에 함유량이 극소량에 불과해도 추적이 가능하다. 레이저 등을 비춰 산란하는 고유의 에너지 신호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화학과 반도체 분야에선 널리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의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용 방법을 연구한 기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생체 물질에는 수많은 물질이 섞여 있어 각각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탓이다. 김 교수는 이를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에서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비유한다.

"특히나 모두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라만신호는 매우 복잡합니다. 수많은 신호가 섞여 있는 탓에 이를 측정한 그래프는 '잡음(노이즈)'이 낀 것처럼 나타납니다. 그 안에 무언가 들어 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각각이 무엇인지는 사람이 분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 센서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분석도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 교수의 연구실은 생체 조직에서 나오는 라만신호를 구분하기 쉽도록 증폭해 주는 센서 칩(일회용 SERS 칩)을 자체 개발했다. 이를 활용한 관측 결과를 모아서 주요 지표(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AI 분석 모델(진단 알고리즘)을 구축한다. 하나의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 복잡한 융복합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김준기 교수 연구실이 자체 개발한 라만신호 증폭 칩(위)과 라만신호 분석 기기 모습(아래). 위의 칩에 검체인 혈액이나 소변을 떨어뜨리고 아래 사진의 기기에서 빛을 받는 판에 위치를 정확히 맞춰 놓으면 라만신호가 측정된다. 측정된 라만 신호는 아래 사진상 모니터에 표시된 그래프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서울아산병원·최지현 기자]

진단 시급한 질병이 우선...5~10년 내 상용화 전망

김 교수는 라만분광법을 활용한 진단 기술이 일종의 '역추적'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질병이 생겼다는 건 신체 내부 물질의 조성 비율이 달라졌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신체 상태의 물질 조성 비율과 비교하면 질병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추적 방식은 전체 혈액이나 유전자를 분석하는 '완전 분석' 방식보단 정확도가 떨어진다. 대신, 분석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정확도가 비교적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진단이 필요한 질환이나 진단이 시급한 질환을 구분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아떨어진 질환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다. 동맥경화와 방광암, 급성 신부전, 코로나19 등의 감염병 등이다.

최근엔 미숙아의 패혈증을 진단하거나 염증세포인 호산구의 라만신호를 측정해 자가면역질환을 진단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특히, 현재 미숙아의 패혈증 진단은 혈액 내 세균을 배양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혈액을 채취하는 것뿐 아니라 검사에 소요하는 1~2일가량의 시간조차 미숙아의 생명이 오갈 수 있어 대안이 절실하다. 국제적으론 치매와 당뇨, 암 등에 대한 체외진단법 개발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김 교수는 라만분광법을 활용한 진단 검사 기술이 향후 5~10년 안에는 의료현장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 동물실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최근 액체생검 연구를 시작하며 임상시험 관문에 들어섰다. 국제적으로도 임상 검증 과정이 빠르게 진행한다면 이르면 3년 안에도 활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최지현 기자 (jh@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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