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불 나면 우왕좌왕 여전…“안내방송도 없어”

김가윤 기자 2024. 1.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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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불나면 어떡하지, 상상은 한 적 있죠. 그런데 막상 불이 나니 대처 방법이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래서 본능적으로 뛰어내리나 봐요."

지난 24일 0시께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5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났다.

25일 한겨레가 불이 난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을 만나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파트엔 화재 감지기가 있었지만 각 가구 주민들은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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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 화재 한달…대응 취약한 현장
지난 24일 0시께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5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 사진. 주민 제공

“자다가 불나면 어떡하지, 상상은 한 적 있죠. 그런데 막상 불이 나니 대처 방법이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래서 본능적으로 뛰어내리나 봐요.”

지난 24일 0시께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5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비명과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에 같은 층에 사는 이아무개(54)씨는 ‘가정폭력인가,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그제야 불이 난 걸 알았다. 복도엔 유독가스가 가득 차 있었다. 문틈에 물수건을 댔지만 가스가 새어 들어왔다. 이씨는 80대 고령의 어머니와 남편, 딸, 그리고 강아지 두마리와 베란다로 나가 “살려달라”고 외쳤다. 한참 뒤 이씨는 현관으로 들어온 소방관에게 구조됐다.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났다. 서울시 등은 소방·피난 규정이 도입되기 전 지어진 노후 아파트 안전관리 기준 강화 등 대책을 마련하고 대피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화재에 취약했고 주민들은 우왕좌왕했다.

25일 한겨레가 불이 난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을 만나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파트엔 화재 감지기가 있었지만 각 가구 주민들은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 비명이나 대피하라는 소리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경비원 감축으로 새벽 시간 화재에 대처할 수 있는 인원이 없어 안내방송도 없었다. 6층 주민 조유성(14)군은 “어떤 사람이 계속 소리를 질러서 부모님이랑 밖에 나가봤더니 엘리베이터 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7층 주민인 ㄱ씨는 “창문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고 알았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1~2분 만에 불길이 커졌다. 자고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그나마 당직을 하고 있던 전기기사가 뛰어나가 직접 소화액을 뿌렸고, 주민이 남아 있는 집을 파악해 소방관에게 알렸다. 이날 사건으로 18명이 구조됐고 40명은 자력 대피했다. 불이 난 집에 살고 있던 부부 2명은 연기를 흡입하고 안면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문가들은 대피 훈련만 잘돼 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선 지난 16일 오후 3시께 11층에서 불이 났는데, 관리실이 직접 안내방송을 하고 가구별로 연락을 취해 주민 모두(36명 자력 대피, 3명 옥상 구조) 10분 만에 대피했다. 3층 주민 ㄷ씨는 “경보음도 울리고 ‘11층에 연기가 번지고 있으니 입주민 여러분 빨리 내려와 달라’며 크게 대피 방송도 나와서 계단으로 바로 내려왔다”며 대처가 잘됐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불이 나기 2~3일 전에 소방교육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별 대피 훈련을 통해 상황별 행동지침을 잘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소방청은 화재 발생 시 ‘무조건 대피’보다 ‘살펴서 대피’로 행동지침을 변경했다. 소방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2019~2023년) 동안 아파트에서 일어난 1만4112건의 화재로 1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대피 중 발생한 사망자가 42명(24.1%)으로 가장 많았다. 채진 목원대 교수(소방안전학부)는 “소방 정기점검 외에도 불시에 관련 시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자발적인 대피 훈련을 통해 각자 안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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