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국경제, 정부는 경기 부양 속도전 나서[글로벌 현장]

2024. 1. 2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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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악화에 성난 민심…정책 전환 신속히 추진
주가부양·대규모 일자리 프로젝트·부동산 대출완화 정책 나와
브릭스 기자회견서 박수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화끈한 유동성 공급’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초부터 증시 자금 이탈 속도가 가속화되고 경제지표가 악화하는 등 바닥 경제가 심상치 않자 정책 전환에 나섰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증시안정화기금’ 조성에 나서는 한편, 은행 지급준비율을 전격 인하하는 유동성 공급 정책을 냈다. 이 밖에도 대규모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통해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고, 빚으로 빚을 갚는 부동산 대출 완화 조치로 부동산 개발업체의 줄도산 사태도 방어에 나섰다.


 역대급 증시 부양 나선 중국 당국

중국은 역대 최대인 2조 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화기금을 조성해 증시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금 재원은 중국 국유기업의 해외 계좌를 통해 조달할 방침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증권금융공사와 중국후이진투자공사가 ‘국가대표 펀드’를 조성해 주식 매입에 나설 계획이다. 국가대표 펀드 규모는 3000억 위안(약 55조8200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한 소식통은 “최고 지도부의 승인을 받으면 증안기금 투입을 포함한 증시 부양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리창 중국 총리가 1월 22일 열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주식시장 안정과 투자자 신뢰 회복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조치’를 촉구한 데 따른 대응책이다. 중국 대표 주가지수인 CSI300지수가 최근 5년 사이 최저치로 떨어졌고, 홍콩 항셍지수도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올해 들어 중국 증시에서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에 대해 “장기간의 부동산 침체 및 주가 급락으로 큰 타격을 본 개인 투자자들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산하 후이진투자공사를 활용한 국가 대표 펀드를 조성해 증시에 개입했다. 2018년 4월과 2023년 10월 증시가 고전할 때 펀드를 통해 주요 종목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부양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하기로 한 대규모 증안기금 투입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조치라는 평가다. 정부 입장에선 장기간에 걸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고,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는 지적이다. 중국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 비중은 99%가 넘는다.

한편 중국 당국은 폭락하는 중국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국내 투자자들의 역외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도 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차이나 자산관리 및 보세라 자산관리 등 일부 증권사가 상하이 증권거래소로부터 비공식적인 지시를 받았고, 그 결과 해외 증권에 투자하는 펀드의 약 30%가 개인 투자자에 대한 판매를 중단하거나 제한하고 있다고 전했다. 판매가 중단된 펀드로는 미국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뮤추얼 펀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역외 소매 투자 구조상 적격 국내 기관투자가 제도를 통해서만 투자를 할 수 있다.


 3000만 개 일자리 프로젝트 착수

중국 인적자원사회보장부는 1월 말부터 4월까지 일자리 3000만 개 창출을 목표로 한 고용 촉진 프로젝트인 ‘봄바람 행동’에 착수한다. 이번 계획은 농촌 근로자와 인력이 부족한 기업이 대상이다. 당국은 봄바람 행동을 통해 농촌 지역의 노동 현황과 고용 수요 등을 정확히 파악해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인적자원사회보장부는 “노동집약 지역과 인력 부족 지역 간 공동 채용을 활성화하고 인큐베이팅 등을 통해 창업을 장려할 것”이라며 “고령의 노동자를 위한 취업 기회와 기술 훈련 등도 병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에 직접 뛰어든 것은 그만큼 중국의 고용 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봉쇄 정책 등의 영향으로 경기가 침체에 빠진 가운데 연간 1000만 명이 넘게 쏟아지는 대학졸업생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만이 쌓이고 있다. 정부의 공식 통계가 발표된 작년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다. 이후 발표를 중단한 국가통계국은 작년 12월 재학생을 제외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청년 실업률이 14.9%라고 제시했다. 이 같은 공식 설명과 달리 실질 청년실업률은 훨씬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리창안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는 고용 정보의 불균형을 줄이고 고용 시장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개발업체, 빚 내서 빚 갚기 허용

중국 정부는 긴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방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냈다.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과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은 1월 24일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수익성이 양호한 부동산을 담보로 기존의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영성(영업용) 부동산 대출의 효과적인 관리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경영성 부동산 대출은 부동산 업체가 소유한 호텔 등 상업용 건물을 담보로 한 은행 대출을 의미한다. 기존 경영성 부동산 대출은 부동산이나 부동산 관련 영역 투자가 주요 용처였는데, 이번에 당국은 ‘기존 부채 상환’에 대출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 마디로 빚을 내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의미다. 이에 새 통지의 적용을 받는 부동산 업체는 앞으로 은행의 경영성 부동산 대출금을 활용해 유지·보수·개조 등 일반적인 부동산 운영뿐만 아니라 앞서 건설이나 취득을 위해 일으킨 다른 대출을 갚는 것도 가능하다.

단, 대출금으로 신규 토지 매입이나 신규 건설사업에는 사용할 수 없다. 대출 기한은 10~15년으로 설정했다. 중국 내 부동산 전문가들은 새 통지가 침체에 빠진 부동산 업체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옌웨진 상하이 E-하우스연구원 연구총감은 “이번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물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큰 틀 안에서 나온 것으로 기업의 자금 상황 개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앞둔 2월 5일부터 은행 지급준비율(RRR)을 0.5%포인트 인하키로 한 것도 이 같은 ‘돈 풀기’ 조치의 일환이다. 지준율을 인하하면 은행들이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돈이 줄어 기업과 가게에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지준율 인하 조치로 약 1조 위안(약 186조원)의 돈이 시중에 풀릴 전망이다.

또 인민은행은 내부에 신용대출 부서도 신설키로 했다. 새 부서는 핵심 분야에 대한 신용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재무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는 “올해에는 총액을 기준으로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합리적이고 충분한 유동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사회자금 조달 규모와 통화 공급 규모가 예상 경제성장 목표와 물가 수준에 부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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