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옛 보고서 베낀' 전북 공무원들의 국외연수 보고서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이게 연수경비 3천만원을 쓰고 작성한 보고서라니…."
전북특별자치도와 14개 시·군 공무원들이 국외연수를 다녀와 작성한 귀국 보고서가 포털과 옛 보고서 베끼기로 점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선진 정책을 지역 혁신으로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연수 기간 외유에 치중하고 있으나마나한 보고서를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26일 연합뉴스가 정보공개 청구로 익산시에서 받은 '에너지 담당 공무원 국외연수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자치도와 도내 시·군 공무원 15명은 지난해 9월 6∼10일 싱가포르로 국외연수를 다녀왔다.
연수에 참가한 공무원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선진 에너지 시책을 배워오겠다며 잼버리 파행 수습이 한창일 때 출국길에 올랐다. 연수 비용은 도와 해당 시군이 1인당 100만원씩 나눠 부담해 모두 3천만원이 들었다.
이들 공무원은 연수를 다녀와서 최근 A4용지 13장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 보고서가 가관이다.
으레 그렇듯 공문서 첫 장은 표지이고, 두 번째 장은 목차를 열거했다. 세 번째 장은 싱가포르의 인구와 면적, 종교 등을 소개한 개요, 네 번째 장은 출장 일정을 표로 정리했다.
이것들은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쓸 수 있는 것들이어서 사실상 보고서는 9장에 그친다.
눈여겨볼 점은 방문 일정을 시간 별로 정리하지 않고 공무원의 근무 시간(오전 9시∼오후 6시)에 맞춰 매일 두 군데씩의 방문 기관만 적시한 것이다. 서울시와 면적이 비슷한 싱가포르는 이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이런 식으로 일정을 잡지는 않는다고 여행업계는 전했다.
5∼11번째 장은 연수 참가자의 주요 방문지인 리버원더스, 마리나 배라지, 보타닉가든, 가든스바이더베이, URA 시티갤러리, 뉴워터 수자원 박물관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단락별로 작성했으나 문장 몇 개만 복사해서 포털에 입력하면 거의 같은 내용이 여러 개 검색된다.
이러다 보니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다.
이 보고서에는 '절대적으로 상수원이 부족한 나라인 싱가포르는, (수자원의) 약 75%를 인근 말레이시아 '조호마루' 지역에서 수입한다'는 문장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2017년 임실군의 한 공무원이 싱가포르를 다녀와서 쓴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그냥 비슷한 게 아니라 '조호마루'라는 지명은 원래 '조호바루' 또는 '조호르바루'(Johor Bahru)로 표기해야 하는데 오타마저도 같다. 문장에 나온 '75%를 수입한다'는 것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통계여서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요나 방문 장소 소개는 포털 자료를 베낄 수 있다고 치더라도 열두번째 장에 있는 '도입과제'마저 같은 것은 우연치고는 매우 기이하다. 이 페이지는 연수 참가자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국내 정책에 접목하기 위한 것인데 2018년 연수 때 (다른 공무원들이 쓴) 내용을 빼다 박았다.
이번 연수 참가자들이 싱가포르를 둘러보고 즉시 도입 과제로 제시한 내용은 '공공청사 및 건축물에 신재생에너지(태양광) 설치', '지중화 사업 확대', '상가 간판 및 현수막 통제' 등으로 이미 정부나 지자체, 민간 주도로 시행 중인 정책들이다. 2018년에는 이러한 보고서가 시사하는 바가 있을 수 있겠지만, 2023년에 같은 내용을 과제로 제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연수에 참가한 익산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지난 몇 년간 제한된 국외연수를 오랜만에 간 것"이라며 "보고서는 전북자치도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북자치도 관계자는 "(보고서는) 방문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고했고 일부는 포털에서 자료를 찾아 넣었다"며 "참가자들의 의견을 공유하지는 않았고 혼자 작성했다"고 말했다.
연수 도중 외유성 일정이 있었는지를 묻자 "방문 일정이 끝나면 자유롭게 (관광지를) 다녀올 수 있지 않으냐"고 답했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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