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에 ‘당뇨병’…하루 3시간 자는 엄마, 직업 구할 수도 없다
“중증 난치질환 인정해 의료비 지원”
8살 준서(가명)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 좋아한다. 늘 밝고 활달해서 학교에서도 인기 만점인 친구다. 준서가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건 2년 전이다. 활달한 준서가 갑자기 계속 누워 있고 물을 많이 마시자 엄마는 준서를 동네 소아과에 데려갔다.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에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준서는 ‘1형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형 당뇨병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아 신체 스스로 혈당을 조절할 수 없는 병이다. 주로 식습관이나 비만 등으로 발병하는 2형 당뇨병과는 다르고, 소아·청소년기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 발병한다.
엄마 옷 갈아입는 사이 ‘쇼크’…의식 잃었던 3시간
신체 내 인슐린 생성이 안 되기 때문에 수시로 인슐린을 주입해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고혈당이 지속되면 눈, 신장, 심장, 신경 등에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고, 인슐린 주입 뒤 혈당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거나 경련을 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혈당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평생 관리해야만 하는 병이지만, 제대로 관리하면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준서 엄마 조명실(42)씨의 하루는 아침 7시30분에 시작한다. 준서를 깨워서 씻긴 뒤 바로 채혈을 해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을 주입한다. 준서가 학교에 간 뒤 엄마는 학교 도서실이나 휴게실 혹은 주차장으로 향한다. 학교 안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으로 준서의 혈당을 계속 모니터링하다 혈당이 오르면 인슐린을 주입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저혈 간식을 먹여야 한다.
준서의 배에는 실시간으로 혈당을 체크하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자동주입기가 달려 있다. 이 덕분에 엄마는 실시간으로 준서 혈당을 모니터링해 상황에 맞게 인슐린 용량을 조절해 원격으로 인슐린 주입을 해줄 수 있고, 준서는 엄마와 떨어져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엄마는 학교 근처 대기…위급상황 언제 생길지 몰라
많게는 하루에 10번 이상, 적게는 7∼8번 인슐린 주입을 하고, 먹는 음식 체크와 저혈 간식 섭취를 위한 연락은 그때그때 수시로 해야 한다. 운동장에서 잠깐 뛰어놀아도 혈당이 떨어지기 때문에 체육 수업이 있는 날 엄마는 학교 근처에서 대기해야 한다. 위급 상황이 생기면 바로 뛰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1형 당뇨병이 발병한 지 5개월 뒤 준서는 저혈당 쇼크로 쓰러졌다. 아침에 인슐린 주입을 한 뒤 밥을 차려 주고 엄마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간 잠깐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구급차에 실려 간 응급실에서 준서는 3시간 동안 의식이 없었고, 의사는 엄마에게 “마지막 준비를 하시라”고 했다. 다행히 준서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그날의 기억은 ‘한순간에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키웠다. 새벽 3∼4시까지 준서 혈당을 모니터링하다 겨우 서너시간 쪽잠을 자고, 점심도 거르며 아이 곁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한부모가정인 준서네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아동교육비·수당 등 매달 약 60만원이 전부다. 실시간으로 아이 혈당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달 의료비만 약 60만원 들지만…
한번 검사·진료비와 약값, 관리기기와 주사기·튜브·알코올솜 등 소모성 재료비, 정기적으로 처방받는 글루카곤(응급 상황에 급격하게 혈당을 올려주는 약) 주사 값을 합하면 3개월에 70만∼80만원의 의료비가 들어간다.
거기에 관리기기 부대용품, 저혈 간식과 주스, 피부질환(혈당기·주입기 부착으로 인한)용 로션·크림 등 구매에 매달 30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친정 등 주변 도움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준서 엄마는 막막하기만 하다.
조씨가 절망한 일은 또 있었다. 지난 9일 충남 태안에서 1형 당뇨병 소아 환자의 가족 3명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지난 24일 한겨레와 만난 조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전 너무 힘들어 잠시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엄마·아빠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태안 사건 이후 전국의 1형 당뇨병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1형 당뇨병 환자는 4만455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5일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회원 100여명은 보건복지부가 있는 세종시에 모여 “1형 당뇨병을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해 본인 부담을 낮추고, 지원 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자동주입기 등 기기 사용이 필수적인데, 기기 구입이 요양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라 요양비로 일부 지원돼 실제 환자 본인 부담금이 큰 상황”이라며 “환자 연령에 구분 없이 의료비를 요양급여로 전환해 본인 부담률을 10% 이하로 낮추고, 중증 난치질환으로 지정해 거의 유일하게 1형 당뇨병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혈당·식단 관리에 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1형 당뇨병이 중증 난치질환에 포함되면 상급종합병원 치료비의 본인 부담금이 60%에서 10%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관련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19일 환우회·전문가 등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환우회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더 필요한 지원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고 관련 정책에 반영시켜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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