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할매’들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책과 삶]
전기, 밀양-서울
김영희 지음
교육공동체벗 | 386쪽 | 2만2000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월 울산의 신고리 원전이 생산한 전기를 영남권에 보내는 계획을 발표했다. 765㎸의 고압 송전탑들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경남 밀양시 주민들은 반대 집회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1월 건설사업을 승인했다. 이명박 정부가 착공하자 2012년 1월16일 주민 이치우씨가 분신해 사망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12월2일에는 주민 유한숙씨가 음독 자살했다. 밀양시는 2014년 6월 경찰력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으로 반대 농성장을 철거했다. 그해 9월 송전탑 공사가 끝났다.
김영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기, 밀양-서울>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인터뷰한 밀양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김 교수는 구술 인터뷰와 현지 조사를 통해 소외된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서사 운동’을 한다. 언론의 ‘밀양 송전탑 사건 일지’는 2014년 사실상 끝났지만 밀양 주민들은 여전히 국가와 싸우고 있다.
송전탑이 건설된 밀양 농촌 지역 주민들의 대부분은 70대 이상의 고령 여성이었다. 김 교수는 이들을 ‘밀양 할매’라고 부른다. 밀양 할매는 한전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것을 강요당했다. 처음에는 ‘나랏일’에 순응하려 했던 밀양 할매들은 스스로 국가의 부조리를 깨닫고 거센 저항에 나섰다. 이 책에는 밀양 할매들의 운동사가 당사자의 언어로 생생하게 담겼다. 김 교수는 자신을 밀양 할매들의 말을 매개하는 이야기꾼이라고 자처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밀양 할매는 귀엽고 순수하며 순박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할머니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탈송전탑·탈핵 운동가이자 에너지 정의를 실천하는 활동가를 부르는 이름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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