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 잔치 초대 못 받았던 ‘NO.17’ 입간판…호주 캠프 출국 4일 전 주인이 극적 잔류했다
2개월 전 11월 말 열렸던 두산 베어스 팬 페스트 ‘곰들의 모임’에는 주요 선수들의 캐리커처 입간판이 그라운드로 나왔다. 두산 팬들은 그라운드로 들어와 선수들의 입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하지만, 구단 사무실 구석 한쪽으로 그라운드로 나오지 못한 입간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홀로 쓸쓸히 있는 느낌의 ‘NO.17’ 투수 홍건희 입간판이었다. 당시 홍건희는 FA 자격을 신청해 두산 소속이 아니었다. 당연히 ‘NO.17’ 입간판은 홍건희의 계약 여부에 따라 어떤 처분(?)을 받을지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홍건희는 11월 말 FA 시장 개장 뒤 약 2개월 동안 협상 테이블을 이어왔다. 하지만, 실제로 선수 측과 구단의 공식 협상 테이블은 네 차례뿐이었다. 협상 초기 홍건희 대리인을 맡았던 에이전시가 최근 불미스러운 이슈에 연루돼 제대로 된 협상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결국, 홍건희는 에이전시를 교체해 새해부터 협상 테이블 재개했다.
두산은 홍건희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샐러리캡 한도를 이유로 협상 금액 상한선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두산은 샐러리캡이 가장 빡빡한 구단이다. 2023년 두산 샐러리캡 여유분은 단 2억 4463만원에 불과했다.
KBO는 지난해 연말 2023년 구단별 연봉 상위 40명의 합계 금액을 발표했다. KBO는 리그 전력 상향평준화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2023년부터 시행되는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 2021~2022년 구단별 연봉 상위 40명(외국인선수와 신인선수를 제외한 각 구단의 소속선수 중 연봉, 옵션 실지급액, FA 연평균 계약금)의 금액을 합산한 구단의 연평균 금액의 120%인 114억 2,638만원으로 샐러리캡 상한액이 확정된 바 있다.
구단별로는 두산이 111억 8,175만원으로 10개 구단 중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SSG가 108억 4,647만원, LG 107억 9,750만원, 롯데 106억 4,667만원, 삼성 104억 4,073만원, NC 100억 8,812만원 등 10개 구단 중 6개 구단이 100억 이상을 기록했다.
샐러리캡을 초과해 계약하는 경우 1회 초과 시 초과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재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2회 연속하여 초과 시는 초과분의 1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재금으로 납부해야 하며 다음 연도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한다. 3회 연속하여 초과 시에는 초과분의 1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재금을 납부해야 하고 다음연도 1라운드 지명권이 9단계 하락한다.
두산은 샐러리캡 여파로 홍건희와 협상에서 계약 총액 조건을 올려주기 힘든 상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산은 사실상 단독 협상 상황임에도 계약 총액 조건을 낮추지는 않겠단 뜻을 전했다. 최근 FA 포수 김민식은 이지영 영입으로 시장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SSG 랜더스 구단의 달라진 하향 조건에 사인을 하기도 했다.
두산 관계자는 “전체적인 FA 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거기에 따라 우리가 금액을 올리거나 낮추거나 그러지는 않을 계획이다. 우리가 제시한 첫 조건에서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본다. 샐러리캡 여파가 있는 건 맞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총액이 바뀌진 않았을 거다. 협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시 조건을 낮출 생각도 없다. 어쨌든 홍건희 선수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기에 언제든지 우리가 처음 제시한 조건으로 문을 계속 열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취재진과 만난 두산 이승엽 감독도 홍건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감독은 “홍건희 선수는 곧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구단에서 잘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2024시즌 신인 투수 김택연의 성장 가능성이 주목받지만, 결국 계산이 서는 불펜 자원인 홍건희가 필요했다. 홍건희, 정철원, 김택연 등이 마무리 투수 자리를 놓고 선의 경쟁을 펼친다면 두산 팀 불펜 뎁스 강화도 저절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첫 2년 계약의 총액은 9억 5,000만원이다. 2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2년 15억원의 선수 옵션을 포함했다.
두산 관계자는 “홍건희는 4년간 꾸준히 불펜의 중심을 잡아줬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전제로 협상을 진행했다. 앞으로도 마운드 위와 아래 모두에서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홍건희는 “협상 기간 동안 팬들께서 ‘베어스에 남아달라’고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계속해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마음가짐은 새롭다”며 “오래 기다리게 한 만큼 마운드 위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것만이 목표다”라고 다짐했다.
홍건희 계약에서 특징적인 면은 계약 기간이다. 홍건희는 4년이 아닌 2+2년 계약을 체결했다. ‘+2년’은 선수 옵션이기에 2년 뒤 홍건희의 의중에 따라 약속한 계약(2년 15억원)이 자동 연장되거나 혹은 자유계약선수로 풀리는 결과가 나온다. 과거 안치홍(한화 이글스)이 롯데 자이언츠와 맺었던 2+2년 FA 계약과 유사한 형태다. 홍건희가 만약 2년 뒤 2년 15억원보다 훨씬 더 높은 시장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유계약선수로 다시 시장에 나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두산은 2020시즌 종료 뒤 내야수 허경민과 4+3년 FA 계약에서 선수 옵션을 최초로 넣은 바 있다. 이번에도 홍건희가 선수 옵션 계약에 합의하면서 2년 뒤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받을 전망이다. 두산 관계자는 “계약 조건 총액에 변화를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수 측 제안으로 4년이 아닌 2+2년 형태의 계약 조건으로 타결됐다”라고 설명했다.
두산은 1월 29일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로 출국한다. 홍건희는 호주 출국 4일 전 극적으로 잔류 계약에 성공하면서 차질 없이 2024시즌 준비에 나선다. 게다가 2개월 전 주인을 잃고 쓸쓸히 구석에 있었던 ‘NO.17’ 입간판도 극적으로 주인과 다시 만나게 됐다. 홍건희 잔류 계약 소식에 베어스 팬들 역시 긴 동면에서 깨어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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