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위기의 ‘조선인 추도비’…“한일 우호 20년 상징물 왜 없애나”

김소연 기자 2024. 1.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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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결정한 일본 군마현 가보니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를 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이시다 마사토(71)가 지난 24일 ‘군마의 숲’ 공원에 있는 추도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군마/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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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찾은 일본 도쿄에서 100㎞ 떨어진 군마현 다카사키시에 있는 ‘군마의 숲’ 공원. 도쿄돔의 5.6배 크기로 군마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인 이 공원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싼 군마현과 지역 시민단체 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를 드러내듯 후문 앞에는 ‘공사 때문에 1월28일 오후 5시30분부터 2월12일 오전 8시까지 공원을 폐원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드넓은 공원이 2주가량 문을 닫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공원 후문으로 3분쯤 걸어 들어가니 저만치 2004년 군마현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쳐 만든 ‘군마현 조선인·한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가 눈에 띄었다. 군마현은 공원 문을 걸어 닫고 세워진 지 20년이나 된 이 추도비를 철거할 방침이다. 일본 전역에 적어도 150개 넘는 조선인 관련 추모비가 있는데, 지방 정부가 직접 철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에 새겨진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자가 서글퍼 보였다.

이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를 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이시다 마사토(71)는 “현이 철거를 위해 중장비를 들여오려고 나무를 잘랐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추도비는 지름 7.2m의 콘크리트 원형 받침 위에 가로 4.5m, 세로 1.95m 크기의 비석과 높이 약 4m의 금색 탑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로 쭉 뻗어 있는 탑과 뒤의 비석은 세로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이시다는 “이 구멍이 조선반도(한반도)를 향해 있다. 군마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영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며 “철거 과정에서 추도비가 부서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쿄돔의 5.6배 크기로 군마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인 ‘군마의 숲’ 공원 후문 앞에는 ‘공사 때문에 1월28일 오후 5시30분부터 2월12일 오전 8시까지 공원을 폐원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현은 이 기간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를 위해 만든 추도비를 철거할 방침이다. 군마/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비문엔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와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의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이 한글·일본어·영어로 쓰여 있고, 뒷면엔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힌 역사의 사실을 깊이 기억에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여 (중략)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바라면서 이 비를 건립한다”고 적혀 있다.

추도비가 현이 소유한 공원에 세워진 것은 29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패전 50주년을 맞아 군마 시민들은 그동안 방치됐던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등을 조사하기 위해 ‘전후 50년을 묻는 군마 시민행동위원회’를 만든다. 군마의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한반도에서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가 약 6천여명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300~5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시민들은 이들의 아픔을 기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을 만들었다. 재일동포들도 ‘총련’, ‘민단’이라는 분단과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이 운동에 참여했다.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지름 7.2m의 콘크리트 원형 받침 위에 가로 4.5m, 세로 1.95m 크기의 비석과 높이 약 4m의 금색 탑으로 구성돼 있다. 군마/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추모비를 만드는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비문에 ‘조선에서 강제로 연행’, ‘가혹한 노동과 비참한 생활환경’ 등 더 분명한 표현을 담고 싶었다. 보수 색채가 짙은 군마현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긴 조정 끝에 현재의 문구가 정해졌다. 한-일 우호의 단단한 토대가 된 무라야마 담화와 군마현 출신인 오부치 전 총리의 손때가 묻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기본 뼈대가 됐다. 2001년 6월 현 의회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 비 설립이 결정됐다. 대신 보수 여론을 고려해 비 앞에서 정치 행사를 열진 않기로 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2004년 4월 지금의 위치에 비를 세웠다. 제막식에는 현과 현 의회, 일본 시민, 재일동포가 대거 참석했다.

철거 논란이 시작된 것은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들어선 2012년부터다. ‘새로운 일본을 생각하는 군마의 모임’ 등 우익단체들이 2004년 제막식부터 매년 진행된 추도식 신문기사를 뒤져 발언자들의 표현 하나하나를 문제 삼았다. 이를테면 “전쟁 중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등의 발언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 우익들은 ‘강제연행’은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라며 추도비를 만들 때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시민모임은 2013년부터 추도식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추도비 10년 허가’를 연장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우익들은 더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등의 철거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일본 우익단체인 ‘소요카제’(산들바람)가 낸 군마현 추도비 철거 청원을 2014년 6월 자민당 의원이 다수였던 현 의회가 채택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현은 7월 추도비 설치 기간 연장 불허를 결정했다. 그때부터 치열한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2018년 1심인 마에바시지방재판소에선 시민모임이 이겼다. 2021년 보수적 색채가 짙은 도쿄고등재판소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시민들의 역전 패소였다. 이 판결은 2022년 최고재판소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현은 지난해 4월 추도비 철거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숨진 아베 전 총리가 시작한 무라야마 담화 훼손 등 ‘지난 역사 지우기’ 작업이 일본 최고재판소의 공인을 받아 군마현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를 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회원들이 24일 오후 군마현청에 있는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군마/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시민모임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다. 추도비 철거 명령에 반발해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다음달 7일 첫 변론기일이 잡혔다. 집회, 기자회견, 성명서 발표 등을 하며 연일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현은 아랑곳없이 이달 29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철거를 하겠다는 ‘대집행명령’을 시민모임에 보냈다. 철거에 필요한 비용 약 3천만엔(약 2억7천만원)을 징수하겠다고 압박도 했다.

시민모임에서 법률 대응을 맡고 있는 시모야마 준 변호사는 “추도비 철거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의 1차 변론이 잡혔는데도 현이 철거를 강행하는 것은 폭거”라며 “우익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추도비가 철거되는 것은 역사적인 퇴행이다. 이것이 성공 사례가 돼 일본 각지에 있는 다른 추도비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후지이 야스히토(74)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이 추도비는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는 속에서 한-일 우호를 약속한 상징물이다. 군마현이 이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미”라며 “역사는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추도비가 철거된다고 해도 시민모임은 끝까지 활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카사키(군마)/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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