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닿는 모든 곳이 보물’…오감만족 일본 규슈 사가현
도쿄는 진부하고, 오사카는 번잡하다. 색다른 일본여행을 원한다면, 작지만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규슈의 사가현이 제격이다. 규수 북쪽에 위치한 사가현은 북쪽으로는 대한해협과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나가사키, 동쪽으로는 후쿠오카와 접해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사가현이지만, 항공편은 준비되어 있다. 티웨이항공에서는 인천과 사가국제공항을 잇는 직항 항공편을 매일 1회씩 운행하고 있고, 3월부터는 매주 3회 운행할 예정이다. 꼭 사가공항이 아니더라도 바로 옆 후쿠오카국제공항에 도착해 공항과 하카타역에서 버스와 기차로 사가현의 중심인 사가시로 1시간 정도면 이동이 가능하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품은 사가현은 역사 깊은 전통문화와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 음식들이 일품이다. 도자기, 사케, 녹차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지만, 온천과 료칸을 빼놓고 사가현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없다.
사가시가 있는 중부 사가에서는 ‘후루유 온천마을’이 유명하다. ‘오래된 탕’이라는 뜻의 후루유 온천은 이름만큼 역사가 깊다. 약 2100년 전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명령을 받아 불로장수의 약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후루유 온천 마을 초입에 자리한 ‘온크리’는 ‘누루유’로 유명하다. 누루유는 신체 온도와 비슷한 약 38도의 온천수로 장시간 즐겨도 몸에 부담이 없어 치유 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노천탕에서 산골짜기의 상쾌한 바람을 마시며 온천을 즐기고, 냉탕에서는 삼나무 숲을 보면 신선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가의 식재료들로 만든 호사스러운 가이세키 요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식으로 일본 가정식 한 상을 내는 대부분의 료칸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뷔페식으로 즐길 수 있다. 식당에서 통창으로 보이는 안개 낀 삼나무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후루유 온천으로 몸을 풀었다면, 물이 좋은 오기에 들러 술을 맛보는 것도 좋다. 사가현의 명산 ‘덴잔(天山)’ 아래 150년 역사를 가진 양조장인 덴잔주조에 들어서면 1970년대까지 사용하던 배달용 도자기 술통들과 술을 숙성시키던 삼나무통에 압도된다. 산의 이름을 딴 ‘덴잔’과 양조장을 운영한 가문의 이름을 딴 ‘시치다’ 등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WC)를 비롯해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한 술들을 시음하고 공장을 견학할 수 있다. 은은한 견과류향이 나는 시치다, 부드러운 풍미와 진한 맛이 함께 느껴지는 덴잔 등을 맛보다보면 어느 술로 캐리어를 채워야할 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오기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가라쓰는 한국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킬 당시 거점으로 쓰이던 나고야 성의 터가 남아있다. 성터 옆 박물관은 임진왜란을 침략전쟁으로 인정하며 한일간의 역사교류를 위해 만든 곳이다. 조선통신사, 임진왜란 등과 관련된 유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도요토미가 천황과 다이묘 등 중요 인사를 만날 때처럼 중요한 자리에 쓰였던 ‘황금다실’을 복원해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라쓰의 또 다른 랜드마크는 일본의 3대 소나무숲 중 한 곳인 ‘니지노마쓰바라’다. 가라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가미야마 전망대에 올라 해안선을 따라 4.5㎞ 길이에 심어진 100만 그루 흑송을 바라보면 누군가 큰 붓으로 한 획을 그어놓은 듯하다. 숲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면 작은 버스가 한 대 보이는데, 지역 맛집인 ‘가라쓰버거’의 본점이니 꼭 들러서 맛보길 추천한다.
중부 사가에 후루유 온천이 있다면, 서부에는 ‘다케오 온천’이 있다. 예전부터 천황이나 다이묘들이 직접 방문해 즐길 정도로 온천이 유명한 지역이다. 온천에 들어가기에 앞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붉은 누문인 ‘로몬’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로몬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모토유, 호라이유, 도노사마유 등 다채로운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면 고급 숙소인 ‘우라리 다케오’를 만나볼 수 있다. 다케오에서 가장 큰 이케노우치 호수 옆에 위치한 이곳은 지난해 전관을 새 단장했다. 2개의 방을 하나로 합쳐, 다다미와 침대가 함께 있는 넓은 객실이 인상적이다. 다케오 온천물이 담긴 대욕장, 호수를 마주하는 실내외 인피니티 스파, 건·습식 사우나 등을 이용하다 보면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저녁으로 사가의 자랑인 ‘사가규(소고기)’로 만든 샤브샤브를 비롯해 사가현 제철 식재료로 만든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저녁만으로 부족하다면 사가 지역의 사케와 일본 소주, 위스키 등을 다양한 핑거푸드가 무료로 제공되는 라운지바에서 아쉬움을 달래도 좋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 파수꾼> 속 배경이 된 3000년 된 녹나무가 있는 ‘다케오 신사’도 이 지역 관광명소다. 신사에서 안으로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이 녹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높이 27m, 뿌리 둘레 26m의 녹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자태에 압도된다. 신비로움에 절로 소원을 빌게 된다.
다케오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다케오시 도서관’은 국내에선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이 벤치마킹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케오 인구가 5만명 정도인데, 이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이 연간 80만명에 이른다. 곡선으로 휜 서가와 일본의 유명 서점 체인인 ‘쓰타야’, 스타벅스가 같은 공간에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로 옆 어린이 도서관은 해먹과 모래사장, 넓은 잔디밭 등이 있어 아이들이 즐길 거리가 충분한 곳이다.
일본 3대 미인 온천으로 유명한 우레시노 온천은 나트륨을 많이 포함해 몸을 담그고 피부를 만지면 매끄럽게 느껴진다. 1300년 전부터 솟아난 온천, 500년 전부터 재배한 ‘우레시노 차’ 그리고 4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자기 ‘히젠 요시다야키’는 우레시노의 대표 3대 전통문화다. 우레시노 중심 거리에는 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료칸과 호텔들이 가득하다. 거리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도자기숍, 기념품 점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꼭 숙소에 묵지 않더라도 곳곳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족욕탕에서 여행에 쌓인 피로를 풀기에 좋다. 온천으로 몸을 달랬다면, 우레시노의 또 다른 명물인 차로 마음을 달래보는 것도 추천한다. ‘티 투어리즘’은 산 속에서 녹차밭과 시내를 바라보며 녹차를 맛볼 수 있는 체험이다. 탁트인 산 중턱 평상에서 녹차밭을 바라보고 있자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차 전문가가 정성스레 내어주는 쌉쌀한 차와 달큰한 화과자를 맛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륙이 아닌 특별한 온천을 찾는다면 사가현 남쪽 ‘다라’가 제격이다. 규슈 최대 만인 아리아케해에 접한 다라는 다케자키지마 근해에서 잡히는 꽃게 ‘다케자키 게’와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굴, 귤, 김 등이 특산품이다. 이런 다라의 명물을 한 공간에서 모두 누릴 수 있는 료칸이 ‘카니고텐’이다. 카니는 ‘게’, 고텐은 ‘어전(御殿)’을 뜻한다. 료칸의 이름처럼 이곳에서는 다케자키 게를 활용한 구이, 찜, 솥밥 등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게를 활용한 요리들을 맛보면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넘쳐 흐른다. 또 다른 특산품인 귤을 막 짜서 내린 주스를 마시면, 게가 남긴 약간의 비릿함도 개운하게 씻어낼 수 있다.
카니고텐의 백미는 아리아케해를 마주하며 즐기는 온천이다. 별관 노천탕과 대욕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최상층에 마련된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을 그야말로 장관이다. 객실에도 노천탕이 있어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프라이빗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아리아케해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도리이(일본 신사 입구에 세우는 기둥문)인 ‘오우오신사 해중도리이’는 다라의 랜드마크다. 바닷속에 만들어진 도리이는 만조에는 바다에 반쯤 몸을 감추고 있지만, 간조에는 가장 안쪽의 도리이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신기한 장소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붉은 도리이가 만들어내는 색감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밖에도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이삼평을 도조(도자기의 시조)로 모시는 일본 도자기의 본진 아리타와 이마리, 연간 300만명이 방문하는 3대 이나리신사 유도쿠이나리신사와 지역 양조장 투어가 있는 가시마, 100개의 열기구가 장관을 이루는 사가현 대표 축제 사가 인터내셔널 벌룬 페스티벌, 형형색색을 꾸민 14대의 대형 가마를 끌고 행진하는 가라쓰군치, 단맛이 특징인 요부코 활 오징어회 등 즐길거리와 볼거리 먹거리가 관광객을 맞는다. 규슈의 7개 현 중 가장 작은 현이지만 그 안에 품은 매력은 풍부하다. 어느 곳을 뽑아도 당첨이다. 사가가 규슈의 보물상자인 이유다.
일본 사가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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