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미국에 병적으로 매달리는 일본…한국은 어떨까? [책&생각]

고명섭 기자 2024. 1.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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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본인 학자들이 이런 물음을 물었다.

이 대담의 바탕에는 미국을 알지 못한 채 미국을 숭배하는 일본인이 너무도 많다는 비판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두 사람은 패전 후 점령기에 일본인들이 미국을 전근대 시기의 사무라이-평민의 관계 속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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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와 항복한 히로히토 일왕. 한겨레 자료사진

불가사의한 아메리카
아메리카를 알아야 우리가 보인다
하시즈메 다이사부로·오사와 마사치 지음, 김해식 옮김 l 북&월드 l 1만8000원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본인 학자들이 이런 물음을 물었다. 사회학자인 하시즈메 다이사부로(76,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와 오사와 마사치(66, 전 교토대학 교수)의 대담을 엮은 ‘불가사의한 아메리카’(2018)는 현존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대한 궁금증을 비교적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이 대담의 바탕에는 미국을 알지 못한 채 미국을 숭배하는 일본인이 너무도 많다는 비판적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본인은 아메리카(미국)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못해 아메리카가 없는 세계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사의하다. 아니, 아메리카에 밀착된 그런 정책을 70년 이상이나 계속해 시행해온 일본은 더욱 불가사의한지도 모른다.”(하시즈메)

두 사람은 미국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말로 기독교(프로테스탄트)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을 꼽는다. 미국이 종교를 기반으로 삼아 생긴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독교가 미국을 설명하는 열쇳말 가운데 하나가 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 탄압을 피해 이주한 신교도가 없었다면 미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인의 생활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이다. 기독교와 프래그머티즘이 묶일 수 있는 이유는 종파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교파는 각자 종교적 진리를 믿는다. 그런데 이 교파의 사람들은 저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이다. 그러므로 교파마다 믿는 신앙의 진리를 초월적인 것으로 제쳐두어야 각자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할 수 있다. 대신에 현실의 삶에서는 실용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소통한다. 진리 문제는 각자의 신앙의 문제로 맡겨두고 생활 세계에서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인의 정신세계로 들어간 두 사람은 기독교의 예정설과 프래그머티즘의 실용성을 동력으로 삼아 흥성한 미국 자본주의를 고찰하고, 이어 미국에서 왜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지, 왜 사회주의가 널리 퍼지지 않았는지를 캐어묻는다. 결론에 이르러 두 사람은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왜 우리는 미국-일본 관계에 속박되는가?’를 묻는다. 두 사람은 패전 후 점령기에 일본인들이 미국을 전근대 시기의 사무라이-평민의 관계 속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고 그 아래 종속된 것이다.

두 사람이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일본인의 무지다. “문제는 일본이 아메리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일본은 미국에 대한 정신적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도 유별나지만, 미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유별나다는 것이다. 미국을 모르면서 미국에 환상을 품고 매달려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아메리카를 아는 것은 아메리카에 대한 거의 도착적인 수준의 의존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런 병적인 집착과 의존에서 탈피할 때 “일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메리카에 대해 또는 세계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이런 유아적인 미국 의존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옮긴이가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유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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