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새로운 북한, 새로운 평화의 길

한겨레 2024. 1.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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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이래 북한이 일관되게 지켜왔던 '우리민족제일주의'라는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의 원칙에 대한 폐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정욱식 선생은 우리가 1990년대 이래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선입견이 그 사이 변화한 국제질서와 북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결과였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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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정욱식 지음 l 서해문집(2023)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전쟁 이래 최대 위기”라는 분석이 쏟아진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가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표면적으로나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함께 불러왔다. 그런데 이제 북한은 우리를 ‘남측’이나 ‘남조선’이라 부르는 대신 정색하고 ‘대한민국’으로 부른다. 남측, 남조선이란 호칭에 정이 간 것은 아니지만, 그간 우리가 남이냐 했던 사이에서 갑자기 성씨를 붙여 이름을 부르는, 공식적으로 남남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변화가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노동신문’에서 ‘남조선면’을 아예 없앴고, 2023년 핵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핵무력법을 헌법에 명시했다. ‘민족’, ‘통일’ 개념을 완전히 지우는 대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이래 북한이 일관되게 지켜왔던 ‘우리민족제일주의’라는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의 원칙에 대한 폐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2022년 영화 제목처럼 이제 북한은 남측과 ‘헤어질 결심’을 굳혔고, 이로써 “남북관계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로 치닫는 중이다.

완전한 붕괴는 아닐지라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국면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정욱식 선생이 지난해 펴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는 이 문제에 대해 귀한 성찰과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알던 북한은 더 이상 없다고 단언한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화를 모색해 왔는데, 남한의 진보와 보수 진영이 진영 논리에 갇혀 희망회로와 희망고문을 반복하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욱식 선생은 우리가 1990년대 이래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선입견이 그 사이 변화한 국제질서와 북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결과였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북핵 문제만 하더라도 중도와 진보는 북한이 핵개발을 협상카드로 삼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노린다고 보았고, 보수와 극우는 북한의 목표가 애초부터 핵무장의 완성이라고 주장해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양측의 주장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19년까지 북한은 핵을 지렛대 삼아 북미관계 정상화를 꾀했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부터는 미국에 대한 미련을 접고 핵 무력을 국가전략의 중추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고립된 국가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북방외교 이후 북한이 국제질서 속에서 고립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국제질서가 ‘신냉전’ 체제로 ‘다극화’되어가면서 한국이 미국 일변도의 가치 외교를 주장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동안, 북한은 새로운 환경을 발판 삼아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해 나가는 중이다.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급속하게 개선되며 28년 만에 북·러 간 군사동맹이 부활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21세기 한국의 거의 모든 정권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며 군비강화에 앞장섰고, 한미동맹이란 미명 아래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문제를 미국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게 만들어버렸다.

이제라도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평화의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때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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