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선출된 공직자의 권력남용 막으려면
해밀턴·매디슨·제이의 합동 작품
왜 연방제 통합 필요한지 역설
소수파 보호, 3권분립 원칙 제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
알렉산더 해밀턴·제임스 매디슨·존 제이 지음 l 김동영 옮김 l 한울아카데미 l 4만9800원
미국혁명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근대 민주주의 체제 성립과 확산에 가장 중요한 모델을 제공한 정치적 변혁으로 꼽힌다. 미국혁명의 정신은 1789년 미국 헌법 제정으로 구현됐는데, 이 헌법의 이론적·사상적 바탕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역사적인 문헌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다. 1995년 처음 우리말로 완역된 이 문헌이 동일한 번역자(김동영 울산대 명예교수)의 손을 거쳐 29년 만에 개역돼 나왔다. 새 번역본은 본문의 모호한 대목을 설명해주는 옮긴이 주석을 상세히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에 담긴 논의를 이해하려면 이 문헌이 작성되고 출간된 시대적 상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애초 미국 헌법은 두 단계를 거쳐 제정됐다. 1776년 북아메리카 동북부 13주가 영국의 지배에 맞서 독립을 선언한 뒤 1781년 만든 ‘연합규약’이 첫 헌법에 해당한다. 이 연합규약을 비준한 13주를 부르는 이름이 아메리카합중국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메리카합중국은 매우 느슨한 ‘국가연합’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연합 중앙에는 입법부만 존재했고 행정부도 사법부도 없었다. 13주는 모두 독립국가로서 각자 주권을 보유했고 조세권과 외교권도 각자 행사했다. 그러다 보니 느슨한 연합으로는 공동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1787년 5월 각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여 헌법 수정을 논의하다가 아예 13주를 연방국가로 통합하는 새 헌법을 만들었다. 새 헌법이 발효하려면 9주 이상의 비준이 필요했다. 이 새 헌법을 놓고 미국 지도층이 ‘페더럴리스트’(연방주의자)와 ‘안티페더럴리스트’(반연방주의자)로 나뉘어 대립했다. 안티페더럴리스트는 13주가 단일연방으로 통합되는 것보다는 몇 개의 국가연합으로 나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을 폈다. 이때 반대 움직임에 맞서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 제임스 매디슨(1751~1836), 존 제이(1745~1829)가 나섰다. 세 사람은 ‘왜 강력한 연방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기고문 85편을 1787년 10월부터 1788년 5월까지 뉴욕주 신문에 연속으로 싣고 그 글들을 묶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 책이 출간된 직후 뉴햄프셔주가 9번째로 새 헌법을 비준하고 뉴욕주도 뒤따랐다. 세 사람은 고대 그리스·로마 이래 수많은 정치체제의 역사를 두루 검토하면서 연방국가 건설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특히 매디슨이 쓴 글들은 미국 헌법의 근본 사상을 가장 잘 설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문헌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집필자들이 대원칙으로 삼은 ‘공화정’ 곧 ‘공화주의 정체’다. 매디슨은 이 책의 39번째 글에서 ‘모든 권력을 국민의 다수로부터 위임받고, 그렇게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정해진 기간 통치하는 정부’를 ‘공화정’이라고 정의한다. 국민 다수에 기반을 두고 그 국민 다수로부터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아 통치하는 정부가 공화정부다. 매디슨은 소수 특권층이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는 공화국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이 문헌은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한 이유를 살핀다. 문헌이 먼저 제시하는 것이 ‘공동 방위’의 이점이다. 작은 나라로 분열돼 있을 때보다 큰 나라로 합쳐져 있을 때 외부의 침략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연방정부 곧 ‘큰 공화국’을 세우는 것은 다수파의 전횡으로부터 소수파를 보호하는 데도 유리하다. 왜 그런가? 작은 공화국의 경우엔 특정한 이해관계를 지닌 당파가 다수를 확보해 소수파를 배척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을수록 특정 당파가 다수를 장악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처음부터 ‘소수파 보호’를 민주주의 혹은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겨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생각이 설득력을 얻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영국에서 탄압받던 종교적 소수파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정착한 데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다수파, 곧 종교적으로 우세한 세력이 소수파, 곧 종교적으로 열세인 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이 문헌은 나라가 크면 종파가 다양해지고 종파가 다양해질수록 특정 종파가 다수파가 돼 소수파를 억압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발상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것이 ‘작은 공화국의 직접민주제’보다 ‘큰 공화국의 대의민주제’가 더 낫다는 주장이다. 직접민주제로 운영되는 작은 나라에서는 특정 당파가 다수파가 돼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이 크지만, 큰 나라에서는 이럴 가능성이 작아진다. 특히 대의제를 통하면 덕망 있는 대표들이 선출될 수 있고 그런 만큼 직접민주제의 폐해도 방지할 수 있다. 집필자들은 고대 아테네를 사례로 들어 직접민주제가 대의민주제보다 더 쉽게 다수파의 전횡을 허용하며 나라의 혼란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직접민주제를 비판하고 대의민주제를 옹호하는 것이 이 문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큰 공화국에 이런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부가 곧바로 국민의 자유와 이익에 봉사하는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디슨은 51번째 글에서 선출된 공직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 위에 군림할 위험이 있음을 강조하며 그런 위험의 원천을 ‘인간의 본성’에서 끌어낸다.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야심 덩어리여서 제약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쓰게 돼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부란 무엇인가? 인간성에 대한 가장 큰 불신의 표출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어떤 정부도 필요 없을 것이다. 또 천사가 인간을 다스린다면 정부에 대한 외부적 통제도 내부적 통제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의 남용을 막으려면 다른 권력의 견제를 빌리는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두고 매디슨은 “야심에는 야심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3권분립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가 독립해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권력남용을 막는 길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도로 구현돼야 하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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