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갔던 트럼프는 어떻게 부활했나…키워드는 복수·바이든·기소
2022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재도전을 선언하자 보수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공화당원들보다 민주당원들이 더 신나겠다”며 재를 뿌렸다. 그가 지원하며 후보로 만든 ‘함량 미달자’들이 2022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대거 낙선해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탈환하리라던 기대가 빗나가자 ‘트럼프 책임론’이 비등한 때였다. 이 틈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지율에서 앞서며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23일 아이오와·뉴햄프셔주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재대결을 사실상 예약했다. 2018년 중간선거-2020년 대선-2022년 중간선거에서 3연패를 당해 한물간 정치인 취급을 받던 그는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했을까?
우선 ‘복수’의 약속으로 불만에 찬 유권자들을 끌어모은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불법 이민, 전쟁 비용 등이 미국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며 바이든 행정부 등 기득권층을 상대로 복수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지난해 3월 “난 당신들의 전사이고 당신들의 정의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배신당한 이들을 위해 응징하겠다”고 한 이래 복수를 계속 강조한다. 정적들을 투옥하고 공무원들을 대량 해고하겠다고 했다. 2016년 대선을 연상시키는 ‘기득권과의 전쟁’은 백인 저소득·저학력층을 중심으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뉴햄프셔 경선 출구조사에서 무엇보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싸우는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들의 86%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난 게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그는 경선 유세에서도 자신의 반대자들을 적, 거짓말쟁이, 변태, 사기꾼, 협잡꾼이라고 부르며 응징을 다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이민자들이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며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 발언을 했다. 아이오와 참패 뒤 경선을 포기한 디샌티스 주지사는 편가르기와 혐오 조장 능력에서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둘째는 ‘바이든’이다. 트럼프(77) 전 대통령도 나이가 많지만 바이든(81) 대통령이 ‘보호막’이 돼주고 있다. 바닥을 기는 바이든 대통령의 업무 수행 지지도도 힘이 돼준다. 취임 후 이제까지 여러 조사를 평균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는 44.1%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이맘때 수치는 그보다 못한 42.1%였다. 하지만 문제되는 것은 현직 대통령 지지도다.
셋째는 ‘기소’다. 그는 4건의 형사사건에 91개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정치적 탄압’ 프레임을 만들 기회를 제공했다. 중간선거 뒤 디샌티스 주지사에게 두자릿수까지 역전을 허용했던 그는 지난해 3월30일 성관계 입막음 돈 지불과 관련해 기소된 직후 디샌티스 주지사를 26%포인트(야후뉴스-유고브 조사)까지 따돌렸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잇따른 기소가 다른 주제들을 압도해 경선이 “왜곡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출석 의무가 없는 민사재판에도 나가며 계속 뉴스의 중심이 되려고 노력한다. 뉴햄프셔 경선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유세 5건을 소화했는데, 그는 뉴욕에서 열린 성폭력 민사재판에 갔다가 밤중에 유세를 한번만 했다. 래리 새버토 버지니아대 정치연구소장은 기소는 공화당 지지층에게 그가 탄압받는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며 “트럼프의 법정 출석은 선거운동”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뿐 아니라 당신들을 처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그와 동일시하며 더 뭉쳤다.
하지만 그를 띄운 요소들은 본선에서는 부메랑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20년 대선에서 등을 돌린 공화당 지지층은 당내 경쟁자들에게까지 “소아성애자”나 “사기꾼”이라고 막말을 하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당 후보가 되면 헤일리 전 대사 지지자들의 40%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또 뉴햄프셔 경선 출구조사에서 42%는 그가 유죄를 선고받으면 대통령직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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