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슬픔이 이별의 전부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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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며 지난해의 일기를 열어 본다.
아예 까맣게 잊어버린 일도 허다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복기는 두 번 살아내는 일이다.
혹은 과거의 다정한 할머니와 이별해야 하는 어린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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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졌어
김양미 지음, 김효은 그림 l 문학과지성사(2023)
한 해를 시작하며 지난해의 일기를 열어 본다. 뭘 그렇게까지 고민했을까 싶은 일들이 많다. 아예 까맣게 잊어버린 일도 허다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복기는 두 번 살아내는 일이다. 어쩌면 앞으로 잘 살기 위해서 과거의 나와 잘 헤어지는 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김양미 작가는 데뷔작 ‘찐찐군과 두빵두’에서 아빠가 없는 두 아이의 우정을 그렸고, '따로 또 삼총사'에서는 홀로 혹은 함께 우정을 쌓아가는 어린이를 그렸다. 이번 ‘잘 헤어졌어’에서는 우정의 반대편을 살핀다. 동화 속 어린이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중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는 일로 채워진다. 새 학년이 되면 짝과 헤어지고, 아끼는 인형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며 한 생이 지나간다. 굳은살이 배긴 어른 마음도 이별 앞에서 덜컹거리는데 말랑말랑한 어린이 마음은 오죽할까.
나도 헤어지고 나면 29박 30일은 울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아무렇지도 않다. “유리문 너머로 토끼 인형을 고르는 너를 보고도 그냥 가던 길을 갈 수” 있고, “좋은 책과 영화를 봐도 네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너에게 왜 그랬냐고 묻지도 않고, 더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수많은 너와 헤어졌기 때문일까. 나는 잘 헤어진 걸까.
다섯 편의 단편 속 어린이는 이사나 오해 때문에 친구와 헤어진다. 혹은 과거의 다정한 할머니와 이별해야 하는 어린이도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추억의 집을 떠나야 할 때도 있다. 어떤 이별이 가장 가슴이 저릴까 묻는 게 부질없지만 내게는 표제작인 ‘잘 헤어졌어’가 가장 아팠다. 무려 7년이나 매일같이 꼭 붙어 지낸 민채와 아진이가 헤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헤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불러온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아진이는 친구인 민채가 부러울 정도로 좋았고 그래서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제 욕망을 숨기려니 힘이 든 건 당연지사. “친구라서 좋은데 힘든 마음”을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가 결국 민채와 헤어진다.
세상에는 지상 2층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도 있고, 지하 1층에서 혼자 지낼 때가 마음 편한 어린이도 있다. 친구라도 관계는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둘 사이에 알게 모르게 권력관계도 작용한다. 앞에 서거나 뒤를 따르는 친구가 정해지고 서로를 길들인다. 헤어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직하게 자신을 만나는 건지도 모른다. 이별은 슬픔 말고 다른 걸 준다. 민채는 “과연 나는 아진이의 마음을 정말 몰랐던 걸까.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라고 자문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똑같은 숲을 보고 있어도 똑같이 보는 게 아닙니다.” 단편 ‘내 친구의 눈’에서 석찬이가 건오에게 해준 말이다. 헤어짐만큼 좋은 공부 거리도 없다. 잘 헤어지고 있는 너희들이 대견하다.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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