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나는 오소리가, 수달이, 여우가, 바로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한겨레 2024. 1.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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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이 엄청나게 웃기면서도 성스러울 수 있을까? 있다.

"내가 늘 자연 속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두려움, 매연, 야망의 냄새가 나는 장소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곳에 있어야 할 때면 웨일스의 언덕에 오소리가 잠들어 있고, 깊은 물속에서 수달이 돌을 뒤집고 있으며, 같은 태양 빛에 여우가 눈을 깜박이고 있으며 옥스퍼드의 내 서재 위에서 부화한 칼새가 콩고강 위의 드높고 뜨거운 푸른 하늘 위,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것들이 위안이 되다니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서만 비슷한 종류의 위안을 받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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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물이 되어보자
찰스 포스터 지음, 정서진 옮김 l 눌와(2019)

한권의 책이 엄청나게 웃기면서도 성스러울 수 있을까? 있다.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가 그런 책이다.

저자 찰스 포스터에게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말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될 수 있어.” 정말? 이를 시험해볼 좋은 방법이 있다. 오소리가 되어보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 정체성에 관한 것. 즉 자기 자신이 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나에게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이를 시험해 볼 좋은 방법이 있다. 여우가 되어보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 이 세상에서 나는 전적으로 혼자가 아닐까? 나는 누군가랑 진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가?

셋 다 엄청나게 중요한 질문이고 나도 한다. 그는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한숨이나 쉬는 나와는 달리 이 문제를 산과 황야, 강과 바다에서 풀어보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른 것일 리가 없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진짜가 될수록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역시 진짜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실험을 한다. 오소리, 여우, 사슴, 수달, 칼새가 되어보는 실험을. ‘너 자신’이 되어라는 말이 드높게 울려 퍼지는 세상에서 찰스는 ‘다른 존재’가 되어보려고 필사적이다. 그는 수달이 되어서 물가에 누워 수달처럼 낮과 밤을 ‘뺨’ 속 깊이(수달의 감각 수용기는 수염이고 수염은 뺨의 피부 깊숙이 심겨 있다) 느끼고자 자신의 ‘뺨을 재교육’하려 한다(수달의 뺨은 강의 등고선을 느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소리가 되어서 땅굴 속에 살고 기어 다니면서 지렁이의 맛을 음미한다. 지렁이의 맛은 몸통과 점액의 맛으로 나뉘는데 이를테면 점액의 맛은 불탄 전선 냄새, 입구린내, 기저귀 냄새…. 후각으로 풍경을 인식하는 오소리는 코로 숲에서 벌어지는 온갖 드라마에 등장하는 들쥐, 지렁이, 거머리 각 배우들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그가 다른 동물이 되려고 어찌나 필사적인지(그의 소원은 오소리의 코를 갖는 것이다) 나도 필사적이 된다. 오소리의 눈으로 눈 내리는 밤을 보려고. 나뭇잎, 들쥐의 사체, 흙과 강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으려고. 동물의 기쁨과 고통, 나무 몸통에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의 혀가 내는 소리, 새순의 기다림과 칼새 한 마리가 올라탄 상승기류의 느낌을 상상하려고.

“내가 늘 자연 속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두려움, 매연, 야망의 냄새가 나는 장소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곳에 있어야 할 때면 웨일스의 언덕에 오소리가 잠들어 있고, 깊은 물속에서 수달이 돌을 뒤집고 있으며, 같은 태양 빛에 여우가 눈을 깜박이고 있으며 …옥스퍼드의 내 서재 위에서 부화한 칼새가 콩고강 위의 드높고 뜨거운 푸른 하늘 위,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것들이 위안이 되다니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서만 비슷한 종류의 위안을 받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런 ‘이상한 위안’과 엉망진창 동물인 인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이 지구는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찰스처럼 다른 존재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두 세계를 충분히 오간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세계를 오간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일뿐만 아니라 덤으로 자기 자신이 무너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진짜 지칠 때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 볼 때이므로.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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