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 외치던 습격범…경찰이 숨긴 정체, 재판서 드러난다

이준희 기자 2024. 1.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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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S] 이재명 피습 그후
지난 4일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해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차량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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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난 2일 흉기로 살해하려 한 김아무개(67)씨에 대한 검찰 기소가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김씨의 구속 기한은 오는 29일까지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초유의 ‘정치 테러’가 발생한 지 스무날이 넘었지만 김씨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경찰은 그의 신상은 물론 범행 전 작성해 언론사와 가족에게 보내 공개하려던 이른바 ‘변명문’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평범했던 전직 공무원이 어쩌다 살인 미수라는 ‘극단적 행동’을 저지르게 됐을까.

“주변 교류 없고, 정치 과몰입”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주변과 교류가 거의 없고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한 인물로 보인다. 김씨는 서울시의 한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1년 퇴직했다. 2005년께 충남 아산시 배방읍으로 이사해 20여년간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했다. 아들과 딸, 손주를 두고 있는 ‘보통 사람’이기도 하다.

배방읍에서 15년 이상 일했다는 ㄹ씨는 “(김씨가) 오래 일을 했지만, 다른 중개업자들과 교류하는 분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ㄴ씨도 “(김씨와는) 10년 전에 밥 한끼 같이 먹은 게 전부다. 평소엔 식사도 집에서 하고 외부 활동은 거의 없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같은 지역에서 20년을 활동한 ㄷ씨 역시 “(김씨는) 성격이 폐쇄적이고 소심했다. 오래된 부동산 업소 사람들과도 왕래가 없었다”고 전했다.

폐쇄적 성격
지인 “박근혜 탄핵 반대 열변”
조력자 “왜 그랬는지 이해 안 가”

김씨는 정치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중개업자 ㄴ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열정적으로 ‘탄핵 반대’를 말했다”며 “다른 분들도 ‘정치 얘기가 나오면 김씨가 매우 흥분하곤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사무실 인근 편의점 주인은 “물건을 사러 올 때면 유튜브 정치 채널 소리가 들릴 정도로 휴대폰 볼륨이 높았다”고 말했다. 김씨 조카 역시 “(김씨가) 4~5년 전부터 꾸준히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다”고 했다. 경찰은 그가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을 다수 시청한 기록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는 자신이 쓴 변명문에 “자유인들의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의 정당 가입 이력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 미래통합당 등 보수정당에 4~5년 동안 적을 뒀다가 탈당한 뒤, 2023년 4월께 민주당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경제적으로도 곤궁한 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신용카드 대출과 중소기업 자금 대출 등으로 매달 400만원이 넘는 돈을 빚 갚는 데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명문 배달 조력자는 동네 건물주

한겨레 취재 결과, 김씨가 범행에 앞서 범행 이유 등을 적은 ‘변명문’(남기는 말)을 배달해달라고 부탁한 조력자 ㄱ씨는 같은 지역에 사는 76살의 원룸 임대업자로 확인됐다. 그의 아내는 한겨레와 만나 “남편은 (범인 김씨한테서) 편지를 받아 전달하기로 했을 뿐”이며 “평소 ‘정치 얘기 하면 싸움 난다’며 정치 얘기는 절대 안 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어 “김씨가 운영하던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원룸 임대 등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정치 이념이 같아서 가까워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 건) 정치적으로 뜻이 통했다기보다 김씨가 부탁할 사람이 남편밖에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 “정치적 테러”
“소영웅주의에 빠져 극단 행동”

부동산 중개업자 ㄴ씨도 “(조력자 ㄱ씨는) 정치적으로 좌우에 치우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ㄴ씨는 김씨가 체포됐다는 뉴스를 보고 난 뒤 ㄱ씨와 통화를 했다고도 했다. 통화 당시 ㄱ씨는 “사람(범인 김씨)이 왜 그렇게 쏠려서 깊이 개입해서… 뭘 그렇게까지 했을까.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ㄱ씨와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취재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경찰은 지난 7일 ㄱ씨를 체포해 조사한 뒤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풀어줬다. 경찰은 ㄱ씨를 살인미수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극단적 정치·사회가 만든 인물”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김씨를 극단적 정치 신념에 기반을 둔 ‘외로운 늑대’형 범죄로 봤다. 김씨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교사한 배후 세력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고, 이런 유형의 범죄자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 실현’으로 확신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경찰관은 “사회가 극단으로 갈 때 사회 내에 소영웅주의가 탄생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김씨가 쓴 글을 보면 조잡하고 한계도 있지만 어느 정도 논리성을 갖추고 있다. 이를 보면 정치적 극단주의자의 정치 테러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증오·배체 정치의 산물 분석도
“정치 이유로 살인 시도 가능”

증오·배제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만들어낸 인물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준복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느냐. 정치적 이유만으로도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준희 김채운 김영동 이승욱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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