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무거우면 조금 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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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생을 재발급받을 수 있을까.
아무나 여권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꿀 수 없다면 조금은 덜어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덜어내야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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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생을 재발급받을 수 있을까. 윤기묵 시인은 시인의 자격으로 우리에게 인생을 재발급해준다. 재발급받는다면 뭘 하고 싶었던가. 성격도 조금 고치고 싶고 부지런해지고 싶기도 하고 눈에 띄는 재주도 하나쯤 갖고 싶다. 그래서 누가 좀 보자는 것도 아닌데 자꾸 꺼내 보며 가장 좋은 자리에 올려두게도 된다.
언제나 처음이 있었던 것처럼 처음 주민등록증을 받거나 여권을 처음 만들게 됐을 때의 기분은 어른이 되어 가질 수 있었던 몇 안되는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제 시작만 하면 될 것 같은 두근거림과 마주하면서 발목에 힘이 들어가던 그때.
나는 여권을 만들어 선물해준 사람이 있었다. 서른이 훨씬 넘은 사람. 아무나 여권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여권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을지도 모를 사람. 그에게 사진을 찍어 준비하라 했고 관공서에서 만났다. 함께 그의 영문 이름을 고민하고 인지대를 대납하면서 마음에 날개를 다는 기분을 느꼈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새해도 어느새 많은 날이 흘렀다.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 앞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들만 흘려보내고 있다.
바꿀 수 없다면 조금은 덜어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무거운 어깨와 가뿐해지지 않는 마음의 더께(몹시 찌든 물건에 앉은 거친 때)에 대해 생각한다. 필요한 것은 평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먼지를 더는 일. 너무 오래 많이 가지고 있어서 공간이 빼곡하다면 그 공간을 비워낸 다음 새로운 것들로 채워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덜어내야 채울 수 있다.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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