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무하유(無何有) 마을

관리자 2024. 1. 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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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환갑 되신 걸 자랑하고 다니십니까?"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질문이다.

EBS 강의에서 내가 환갑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하는 방송을 보았다는 것이다.

더 기쁜 것은 환갑 넘어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너는 나이 육십이 되어도 늙지도 않는다고 한마디씩 던지는 덕담이다.

그런데 정말 환갑이 좋은 이유는 나보다 똑똑하고 공부 잘했던 친구들을 제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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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환갑에 자만하고 우쭐대다
남은 인생길 큰 낭패 당할 수도
우리 모르는 시간·지식 앞에선
사물의 대소 쉽게 말할 수 없어
장자가 꿈꾸며 제시한 세상은
모두 있는 대로 인정해주는 곳

“왜 그렇게 환갑 되신 걸 자랑하고 다니십니까?”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질문이다. EBS 강의에서 내가 환갑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하는 방송을 보았다는 것이다. 올해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은 내가 태어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나는 환갑이 된 것이 너무 기쁘고 대견하다. 우선 환갑도 안돼서 돌아가신 부모님보다 오래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효도하는 일인가. 더 기쁜 것은 환갑 넘어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너는 나이 육십이 되어도 늙지도 않는다고 한마디씩 던지는 덕담이다. 머리는 염색도 안했는데 여전히 검고, 얼굴에 주름살도 그냥 언뜻 보아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정말 환갑이 좋은 이유는 나보다 똑똑하고 공부 잘했던 친구들을 제쳤다는 것이다. 학교 때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좋은 직장, 높은 지위에 있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정년퇴직 소식을 알리며 인생 2막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조용히 공부하며 책을 쓸 수 있는 조그만 시골 학당이 있고, 나에게 배우러 오는 수준 높은 학생들이 있고, 강의와 글을 청하는 곳이 있으니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황하게 환갑을 스스로 자랑하고 우쭐대다보니 마음 한편이 허전해진다. 사실 고령화시대에 환갑은 더이상 노인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려고 해도 아직 이르고, 연금도 몇해를 더 기다려야 한다. 앞으로 건강·일·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언제 다시 역전될지 안심할 수 없다. 90살은 넘어서야 인생의 결산을 겨우 할 수 있으니 너무 자만하거나 자랑하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팽조(彭祖)는 800살을 살며 장수한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팽조는 양생(養生)과 수신(修身)을 잘하여 아내 49명과 아들 54명을 두었다고 한다. 팽조에 비하면 갓 환갑을 넘긴 나의 나이는 소년에 비유할 것이다. 팽조가 오래 살았다고 하나 그보다 더 오래 산 존재도 많다. ‘장자’에는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나온다. 8000년을 봄으로 하고, 8000년을 가을로 하며 사는 장수하는 나무다. 대춘의 일년은 인간의 세월로 1만6000년이다. 팽조가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나 대춘에 비하면 어린아이는커녕 배 속의 태아도 아니다.

오래 사는 걸로 따지면 소년(少年)과 대년(大年)이 있고, 지혜로 따지면 소지(小知)와 대지(大知)가 있다. 팽조는 환갑인 나와 비교하면 대년이지만, 대춘에 비교하면 소년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만큼의 하늘만 아는 소지이지만 구만리 하늘을 날아올라 남쪽으로 비행하며 세상을 크게 보는 붕새는 대지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시간의 길이와 지식의 크기가 있으니 누가 함부로 소년과 대년을 구분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 세상 100세 살았다고 어디 가서 명함을 내미는 것은 대년과 대지의 관점에서 보면 어린아이 옹알이만도 못할 것이다.

장자가 꿈꾸는 세상은 무하유(無何有) 마을(鄕)이다. 무하유는 ‘어떠한(何) 무엇도 있지(有) 않다(無)’는 뜻이다. 나이와 지식으로 타인을 억누르며 자신의 권위를 지켜나가던 당시에 장자는 무하유 마을을 유토피아로 제시했다. 그곳은 나이로 어깨에 힘주고, 지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곳이 아니다. 무하유 마을은 나이·지위·지식을 비교하지 않고 모두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동네 막다른 곳, 동막골이다. ‘장자’의 무하유 마을 장(章)을 읽으면서 겨우 환갑 나이에 이러쿵저러쿵 환갑을 기뻐하며 자축하고, 세상의 지혜는 대충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나를 보며 헛웃음만 나오는 추운 겨울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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