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고 넘치고 값 떨어지고…“10만t 이상 격리해야”

서륜 기자 2024. 1.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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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농협, 지난해 200만t 매입
전년 동기보다 20%가량 증가
농가 위해 높은 가격에 사들여
80㎏ 19만원대…하락세 지속
2022년 같은 대규모 적자 우려
정부, 값 안정화대책 마련 시급
새해 들어서도 쌀값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침체와 소비부진 등으로 주산지 농협들의 벼 재고 부담도 커지고 있다. 23일 전북 서익산농협 벼 건조저장시설(DSC) 창고에 지난해 이맘때보다 1600t 이상 늘어난 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벼 보관 상태를 점검하던 정범수 서익산농협 경제상무는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출하를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익산=김병진 기자

“정부가 농협이 보유한 쌀 5만t을 해외 식량 원조에 활용하기로 했는데도 쌀값 반등 기미가 전혀 안 보여요. 최소 10만t가량을 추가하거나 선제적으로 시장격리를 해야 쌀값이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운영하는 전국 지역농협이 새해 들어서도 극심한 불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수확기 벼를 높은 가격에 많이 샀는데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판매는 안되다보니 2022년 같은 대규모 적자 사태가 재연될까 우려해서다.

최근 농협 RPC를 둘러싼 제반 여건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며 곳곳이 지뢰밭이다. 우선 매입량이 너무 많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지난해 수확기에 농협 RPC와 벼 건조저장시설(DSC) 등이 매입한 벼는 무려 200만1000t(정곡 기준)으로 전년 동기(165만8000t)보다 20.7% 늘었다.

쌀값 하락을 우려한 민간 RPC가 벼 매입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정부 공공비축미 매입량이 전년보다 5만t 줄어든 데다 시장격리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농협은 농민이 생산한 벼를 묵묵히 사들여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셈이다.

충남 만세보령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문창환)이 지난해 농가에서 매입한 벼는 무려 4만6301t이다. 전년(3만7082t)보다 24.9%나 늘었다. 매입한 벼 가운데 4000t가량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사일로에 들어가지 못한 채 RPC와 7개 DSC 마당에 야적돼 있다. 문창환 대표는 “야적 물량이 가장 많을 때는 마당에서 차량을 운행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고 하소연했다.

매입가격도 높았다. 지난해 전국 농협 RPC(131곳)의 벼 평균 매입가격은 40㎏들이 한포대당 전년 대비 2333원 올랐다. 인건비와 농자재값 상승 등으로 생산비가 증가하자 농협은 농가소득 보전 차원에서 높은 가격으로 벼를 매입해야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비싸게 벼를 샀는데 쌀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15일자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20㎏들이 한포대에 4만8958원을 기록했다. 80㎏들이로 환산하면 19만5832원이다. 전순기인 5일(19만6656원) 대비 0.4%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수확기 첫 가격인 10월5일 이후 10개 순기 연속 하락했다.

게다가 통계청이 발표하는 쌀값은 전국 평균일 뿐 일부 지역에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쌀이 거래되고 있다. 실제로 ○○지역 쌀값은 18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지역 일부 민간 RPC는 16만원대에 쌀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의 한 RPC 관계자는 “현재 쌀값이 떨어지는 추세가 심상치 않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쌀값이 폭락했던 2022년과 같은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현재 쌀값 하락세는 2022년을 제외하고 예년 같은 기간에 견줘 유독 가파르다. 특히 정부가 농협이 가지고 있는 2023년산 신곡 5만t을 해외 원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담은 쌀값 안정 대책을 지난해 11월 두차례나 내놨지만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쌀 판매도 잘되지 않아 재고는 쌓여만 가고 있다. 2023년 한해 농협의 쌀 판매량은 187만8000t으로 평년과 비슷하고 전년보다는 7%나 적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말 농협이 보유한 재고 물량은 126만1000t(정곡 기준)이다. 평년 동기보다 20만9000t(20%)이나 많은 실정이다.

전남의 한 농협쌀조공법인 관계자는 “현재 재고량으로 봤을 때 한달 평균 3000t은 가공해야 하는데 쌀 소비가 부진해 그 절반 물량만 겨우 소화해내는 실정”이라며 “8∼9월 조생종 벼를 매입하려면 사일로를 비워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장승환 전북 김제 백구농협 조합장은 “소비량이 많이 줄었는지 쌀이 잘 팔리지 않아 걱정”이라며 “특히 설 명절 전에는 쌀이 많이 나가는데 올해는 이런 특수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산지 분위기를 전했다.

농협 RPC의 경우 저가 판매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도 판매부진과 재고 급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RPC 1∼2곳만 저가로 팔아도 그 값이 도미노처럼 다른 곳으로 퍼지는 특성이 있다. 마트 등 쌀 납품처가 RPC에 하락한 해당 쌀값으로 판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경제지주는 농협 RPC에 쌀을 원가 이하로 팔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충남의 한 RPC 장장은 “저가 판매를 최대한 지양하다보니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0%나 줄었다”며 “판매처의 저가 납품 요구를 거절하면 그 빈틈을 민간 RPC 등이 치고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고를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가격에 팔자니 RPC 적자가 우려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대책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최승운 전북농협RPC협의회장(김제 금만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해외 원조 물량에 5만t을 추가하고 시장격리도 5만t가량 해서 하루빨리 쌀값 20만원선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동 충남·세종농협RPC협의회장(홍성 금마농협 조합장)도 “대책을 찔끔찔금 내놔서는 회복이 어렵다는 사실을 과거에 이미 경험했다”며 “최대한 많은 물량을 시장격리 등으로 빼낸 후에 쌀값이 급등하면 공매를 통해 안정시키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병완 농협 RPC전국협의회장(전남 보성농협 조합장)은 “농협이 재고를 많이 가지고 있고 일부 대농가 창고에도 벼가 가득한 상황에서 쌀값 상승 기대는 요원하다”며 “2022년과 같은 쌀값 폭락이 재연되는 것을 막으려면 설 명절 전후로 대규모 물량을 선제적으로 시장격리를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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