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 ‘구원투수’ 쌀가공식품, 17조원 시장으로 키운다

하지혜 기자 2024. 1.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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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산업 육성 5개년 계획
가공밥 등 10대품목 집중육성
계약재배 중심 유통체계 구축
세계 글루텐프리시장 본격 공략
기업에 비용 지원 인증 획득 장려
민간 고품질 신곡 조달 활성화
정부양곡 공급계획 조기 통보

쌀가공식품은 침체된 쌀시장의 구원투수로 불린다. 밥쌀 수요는 나날이 줄어드는 반면 쌀가공식품시장은 매년 10% 이상 몸집을 키우고 있다. 쌀가공식품의 성장세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23일 ‘제3차 쌀가공산업 육성과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2024∼2028년)’을 내놨다. 미래 유망품목 집중 육성, 국내외 수요기반 확대, 산업 성장기반 고도화 등 3대 과제를 5년간 추진해 쌀가공식품시장 규모 17조원, 수출액 4억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10대 품목 집중 육성…가루쌀로 뒷받침=우선 쌀가공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유망품목을 집중 육성한다. 가공 밥·죽, 도시락·김밥, 떡볶이, 냉동떡, 쌀증류주, 쌀음료, 쌀국수, 혼합면, 쌀빵, 쌀과자 등 10대 품목이 대상이다. 간편·건강·케이푸드(K-food·한국식품)·뉴트로(new-tro·새로운 복고) 등 국내외 식품 소비 유행을 감안해 성장동력이 될 만한 품목을 꼽았다.

특히 쌀가공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공밥·도시락·김밥 등 가정간편식(HMR)의 국내외 프리미엄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즉석밥·볶음밥 등 일부 밥류 제품에 여전히 활용되는 외국산 쌀의 공급을 연차적으로 줄여 2028년엔 완전히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대신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도담쌀’, 위염 완화에 좋은 ‘조생흑찰’ 같은 기능성 쌀과 고품질 쌀을 사용한 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한다.

국내외에서 글루텐프리(gluten free·글루텐이 없는) 건강 간편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냉동떡은 품질 저하 방지, 상온 유통 등 수출·물류 관련 연구·개발(R&D)을 추진한다. 아울러 젊은층의 주류 소비문화에 맞춰 쌀증류주시장과 쌀 성분을 활용한 유제품과 음용식 식사대용품 시장을 새로 육성한다.

수입 밀 대체 효과가 큰 쌀빵·쌀국수·쌀과자 제품 개발과 시장 육성에도 주력한다. 특히 가루쌀(분질미)을 활용한 제품화를 적극 추진해 수입 밀가루 수요의 10%(20만t)를 가루쌀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식품업계 수요에 맞춰 가공·도정할 수 있는 가루쌀 전문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내년부터 조성한다. 가루쌀 원료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RPC·식품업체에 원료 매입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계약재배농가에 전략작물직불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전한영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올해는 정부가 공공비축용으로 가루쌀 5만t을 매입하지만 장기적으로 매입량을 늘리기 어려운 만큼 식품업계와 농업계가 주도하는 계약재배 중심의 유통체계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시장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농가와 계약재배를 확대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금과 더불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유인책을 구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글루텐프리식품시장 공략 본격화=정부는 국내외 시장 공략을 위해 글루텐프리에 주목한다. 글루텐은 곡물에 함유된 불용성 단백질로 일부 사람에게 소화 장애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데, 쌀에는 글루텐이 없다. 글루텐프리식품이 세계적인 건강 먹거리로 인정받으면서 쌀가공식품시장을 확대할 기회도 늘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국내 기업의 글루텐프리인증 현황은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로부터 국내 글루텐프리인증(KGFC)을 받은 기업은 8곳, 해외 인증을 획득한 업체는 3곳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각적인 지원을 통해 2028년까지 국내와 해외 글루텐프리인증을 받은 기업을 각각 100곳, 30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주요 방안으로 인증 등록에 필요한 제품 성분 시험·분석, 컨설팅, 현장 심사 등에 드는 비용 절반을 지원한다. 올해는 시범적으로 5개 업체에 한곳당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최영민 쌀가공식품협회 한국글루텐프리인증사업단장은 “북미·유럽처럼 글루텐식품에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셀리악병 환자가 많은 나라에선 글루텐프리인증을 받은 쌀가공식품이 프리미엄 제품으로 판매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인증 등록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이 많은 만큼 지원 대상을 점차 확대해야 정부 목표를 달성하고 쌀가공식품 수출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료 공급체계 개선=쌀가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체계 구축이다. 여기에는 가공용 쌀을 민간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활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제2차 쌀가공산업 육성과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2019∼2023년)’에도 민간 조달 확대안을 담았지만 가공용 쌀 소비량(주정용 제외) 중 민간 신곡 비율은 2018년 54.2%에서 2022년 44.5%로 되레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정부양곡 비율은 45.8%에서 55.5%로 늘었다. 정부양곡은 쌀 수급 상황과 정부 재고량에 따라 공급 변동성이 큰 만큼 공급량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정부양곡에 의존하는 쌀가공식품 제조 업체들이 “일정하게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시장에 쌀이 부족할 땐 원료곡을 구하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전 식량정책관은 “쌀 공급과잉으로 정부양곡 재고가 늘고 수입 쌀을 가공용으로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선 당장 가공용 쌀의 정부양곡 의존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쌀가공산업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거듭나려면 민간에서 고품질 신곡을 조달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양곡에 대한 중장기 공급 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업체별 공급 계획을 세워 조기 통보할 예정이다. 쌀가공식품별로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 계약재배 지원을 강화하는 등 안정적인 민간 조달체계도 구축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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