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소방관 느는데, 간병비는 15년전 그대로

안준현 기자 2024. 1. 26.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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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군인보다 더 열악
지난해 4월 경기 양평군 국립교통재활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규빈 소방사가 휠체어를 타기 위해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습. /소방청

“임용된 지 4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어요. 누구보다 건강했던 제가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니… 얼굴에 붙은 벌레도 못 떼어 냅니다.”

경남 창원시 의창소방서의 새내기 소방관 김규빈(31)씨는 2022년 9월 새벽 태풍 ‘힌남노’가 몰아칠 때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를 치우러 출동했다. 작업 도중 5~6m 크기의 가로수가 넘어지며 뒤를 덮쳤다. 이날 사고로 경추 4번이 골절됐고, 신경이 손상되면서 사지(四肢)가 마비됐다.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데 몸은 전체가 멈춰버렸다.

2022년 김규빈 소방사(왼쪽 넷째)가 임용 전 중앙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동기들과 찍은 사진. /소방청

초기엔 재활을 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서울·부산 등 전국 병원을 돌아다녔고, 작년 10월부터는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 있다. 재활만 1년5개월째,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그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는지… 어머니께 죄송하죠” 하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곁은 어머니(57)가 지킨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아들 간병 때문에 일도 그만뒀다. 공상(公傷) 인정을 받았지만 정부가 주는 치료비와 간병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벌이를 전담하던 아버지마저 최근 손목을 다쳐 일을 못한다. 어머니는 “가족 모두의 삶이 엉망이 됐다. 아들이 ‘병원비는 있느냐’고 물을 때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김씨처럼 화재나 재난사고 현장에서 공상을 당한 소방관은 한 해 1000명이 넘는다. 2013년 316명에서 2022년 1080명으로 10년 새 3배나 늘었다. 이 중 화재로 인한 공상이 72건에서 236건, 구조 현장의 공상이 26건에서 90건으로 각각 증가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그동안 전체 소방관이 2배로 증가해 공상자도 늘었겠지만, 최근 폭우나 산불 같은 자연 재해가 자주 발생해 소방관이 다치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이런데도 공상자들에게 지급되는 치료비나 간병비 등 요양급여 기준은 15년 전과 똑같다. 2009년 이후 바뀌지 않았다. 특히 김씨처럼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는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 간병비다. 현행 공상 간병비는 하루 최대 6만7140원이다. 김씨보다 상해 정도가 덜한 환자는 4만~5만원 정도 받는다. 시세와 비교하면 3분의 1정도 수준이다. 김씨 어머니는 “초기엔 간병인을 썼는데, 규빈이처럼 못 움직이는 환자는 더 비싸서 하루 18만~20만원씩 든다”며 “도저히 간병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직접 돌보고 있다”고 했다.

치료비도 걱정거리다. 김씨의 경우 치료비만 월 5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 중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급여 항목이 200만원이나 된다. 사고 후 약 15개월 동안 치료비로 5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2021년 7월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투입됐던 최모 소방관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공상으로 인정됐다. 현재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 때마다 초음파 검사 등 검사 비용은 자기가 부담한다. 치료비 지원 한도가 기간은 최대 2년, 횟수는 최대 10회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부산 동구에서 발생한 목욕탕 폭발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가 중상을 입은 소방관 3명도 아직까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한 명은 안와골절과 뇌출혈로 중태에 빠졌고, 나머지 2명은 전신 2도 화상을 입었다. 이들 역시 치료비 등을 지원받지만 넉넉하지는 않다.

현장 사고를 자주 겪는 군과 경찰보다 더 열악한 것이 소방이다. 소방 전문가들은 “군은 군인재해보상법, 경찰과 소방은 공무원재해보상법에 따라 각각 공상 요양급여를 주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그나마 군과 경찰은 부족한 부분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는데 소방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군은 국군통합병원을 비롯해 부대별, 지역별로 전문 의료기관을 갖고 있다. 경찰도 1949년부터 국립경찰병원을 운영 중이다. 간병비 부담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경찰청은 오는 3월부터 경찰병원의 간호간병이 가능한 병상을 44개에서 88개로 2배 늘리기로 했다. 소방은 내년에야 처음으로 충북 음성군에 국립소방병원이 문을 연다.

방장원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특임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국가에선 소방관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 군인과 경찰보다 오히려 더 나은 대우를 받는데 우리나라에선 군과 경찰보다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면서 “화상 전문 병원이 필요하다고 20여 년 전부터 요구해 왔는데 이제야 생기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상자가 갈수록 느는데도 소방 조직에 이런 일을 전담할 팀이나 과는 물론 담당자도 없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2월 19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공무 수행 중 입은 공상에 대해 치료비와 간병비 지원에 부족함이 없도록 관련 제도와 규정을 조속히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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