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대법 확정 판결 땐 노사관계 대변동
"직접 근로계약 관계없다"며 교섭 거부했지만
하급심 법원 "원청 빠지면 근로3권 보호 안 돼"
하청 근로조건 개선의 길 열리나... 대법원 주목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어도 원청기업이 하청 노동자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이 법리를 받아들인다면 노사관계가 기틀부터 바뀔 거라는 관측과 함께,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 제정 논의가 다시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은 전날 물류업체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특수고용직 택배기사가 모인 하청노조인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앞서 CJ대한통운은 2020년 3월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노사가 임금·노동시간·근로조건을 협의하는 단체교섭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다. 그런데도 법적 분쟁이 생긴 이유는 CJ대한통운과 택배기사들이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지역 집배점을 사이에 둔 간접고용 관계여서다.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의 교섭 요청을 거부하면서 "당사는 사용자가 아니므로 개별 집배점주와 교섭하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중노위와 1·2심 법원은 "CJ대한통운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맞고 교섭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며 택배노조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 법원 판단 근거는 "원사업주(집배점주)가 지배력·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을 빼고) 원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근로조건 개선·유지와 근로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3권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택배노조가 교섭 의제로 제시한 배송수수료 인상, 주5일제 시행 등은 근로조건과 직결되면서도 원청 방침에 좌우돼 개별 집배점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만큼 CJ대한통운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관심은 대법원 판결에 쏠리고 있다. 대법원은 앞서 2010년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와해' 사건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과 쟁점이 유사하지만 하청노조가 항소심에서 진 'HD현대중공업' 사건은 7년째 계류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부터 HD현대중공업 사건을 놓고 심층 검토를 진행 중인데,원하청 구조가 만연한 한국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워낙 큰지라 대법원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연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대법원이 비슷한 시기에 두 사건의 결론을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하청 노동자에게는 근로조건 개선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이사장은 "플랫폼·특수고용직 등 모호한 고용 관계에 있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노조법상 기본 원칙을 지키라는 진일보한 판결"이라며 "원하청 공동교섭이나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노란봉투법 취지가 법원 판결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원청 기업은 노무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인사노무팀 변호사는 "노동법의 기본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결과"라며 "하청을 사용하는 회사는 수많은 하청노조와 노사관계가 형성돼 단체교섭을 해야 할 수 있고, 하청노조 파업 시에도 사용자의 대체근로 금지 의무로 인해 원청 사업까지 그대로 멈춰 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크게 환영했고 경영계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간접·특수고용 노동자가 이제 온전히 노조 활동을,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올해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과 병행해 하청·간접·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직접적 교섭에 나서도록 투쟁을 조직하겠다"고 예고했다. 경총은 "산업 현장은 하청노조의 원청 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 '실질적 지배력' 유무 소송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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