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수 천명의 희생에도 사과 않는 일본…꼭 기억해야 할 '우키시마호 침몰' 조명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우키시마호는 왜 폭발했나.
2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부산행 -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이라는 부제로 반드시 많은 이들이 기억해야 할 그날을 조명했다.
1945년 8월 22일, 일본의 북단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구에서는 광복 일주일 만에 첫 귀국선이 만들어졌다.
고향으로 보내주겠다며 아오모리현 일대 한국인들을 일제히 모집한 오미나토 해군. 이에 한국인 수천 명은 항구에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강제 동원되어 끌려온 18살 소년부터 가족들을 고향 땅에 남겨두고 홀로 강제 동원된 한 가정의 가장까지 다양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산까지는 자그마치 3,4일이 걸리는 여정. 그런데 배는 출항한 지 3일이 넘어서도 여전히 일본 연안에 있었다.
부산이 아닌 일본의 마이주르만에 닿은 우키시마호.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배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고 두 동강 나버린다.
이에 배 아래로 바닷물이 순식간에 들어차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다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충격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 사건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사실 조선사람이 이 배를 타지 않으면 영원히 고향에 못 간다는 협박에 선박에 올랐던 조선인들. 사고 후 9년 만에 인양된 배의 선체 안에서는 수백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 해구는 정확한 사건의 원인이나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생존자들이 기억하는 것으로 당시 탑승객은 최소 5천 명에서 8천 명가량 그러나 일본이 기록한 문서에는 전혀 다른 숫자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나기 전 일부 승무원들은 구명정을 내리고 짐을 챙겨 떠나는 것이 목격되었는데, 이 또한 석연찮았다.
훗날 당시 함장을 포함해 승무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조선으로 가라는 명령이 갑작스러웠다. 우리는 오미나토는 떠나지만 부산으로는 안 간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선인들 중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라며 황당한 이야기를 해 분노를 자아냈다.
처음부터 목적지가 부산이 아니었던 우키시마 호. 또한 해군은 출항 이유에 대해 조선인들의 불온한 움직임 때문에 빨리 귀국시켰다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갔다.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은 사건의 진실 규명과 합당한 사과를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해 소송을 진행했지만 증거가 부족해 고의 폭발 의혹에 대해서는 물을 수 없었고, 승객을 안전히 수송하지 못한 데 대한 손해배상과 사망자들의 유골 반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소송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사건 발생 50년 만의 일이었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나온 판결은 전부 패소.
일본은 폭침은 인정하지만 배상할 수 없다며 증언을 뒷받침할 물적 증거가 없다며 책임을 미루었다.
또한 함장이 부산이 아닌 마이즈루만에 입항한 것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일본 해군 쪽 손을 들어주었다.
수천 명의 한국인들이 운명도 모른 채 우키시마호에 탔고 배와 함께 침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
기뢰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하지만 문제는 원인 자체의 규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현장 영상, 사진도 없어 진상을 밝혀낼 길이 없는 것.
또한 제대로 된 협조조차 해주지 않는 일본 정부와 진상 규명 요청도 제대로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에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시름만 늘어갈 뿐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만이 유일한 증거로 남은 우키시마호 사건. 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바다에서 나올 때 다들 알몸으로 헤엄쳐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는 허우적댈 때 옆사람이 옷을 붙잡았는데 이때 잡히면 나도 죽을 것 같아서 옆 사람의 뿌리치고 나와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뿌리친 이들에 대한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았다.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날을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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