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민주당 총선 프레임이니
속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옳다
하지만 국민은 뭘 기대하나
결정적 순간에 선택 잘못되면
이번 총선도 다음 대선도
통한의 눈물 흘릴 것
한국 정치가 갈림길에 섰다. 모든 게 열려 있는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을 둘러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대립이 그 계기다. 이 사건은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갈등은 근본적인 것이다. 그 해법에 따라 짧게는 4월 총선, 길게는 향후 3년간 윤 대통령의 국정, 그리고 2027년 대선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먼저 4월 총선이다. 지난 21일로 한 위원장은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사이 지지율이 이재명 대표와 대등한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대선 후보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답보 상태였다. 전국 순회와 정치개혁은 총선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필패다. 총선은 대통령 얼굴 가지고 하는데,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과 연동되어 있다.
한 위원장은 지지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은 아니라는 게 지금 민심이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드러난 정권심판론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문제, 그리고 대통령의 허수아비 같은 여당이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한 위원장의 선택은 외통수다. 여당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고, 명품 백으로 엉킨 매듭을 잘라내야 했다. 하지만 총선 80여 일을 앞두고,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참다못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까지 빗대며 ‘김 여사 리스크’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제야 한 위원장도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동조했다.
일단 말뿐이지만, 그 효과는 쿠데타에 가까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명품 백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이고, 김 여사는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본다. 70%의 ‘국민의 눈높이’와 정면충돌하는 견해다. 한 위원장이 그 점을 밝히자, 윤 대통령은 바로 사퇴를 요구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분노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윤 대통령이 민심 반대편에 서서 국민과 싸우고 있고, 그런 사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심하게 말해, 이제부터 대통령이 아닌 국민과 함께 가겠다는 독립선언이다. 이렇게 일단 당의 독립, 김 여사 리스크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열었다. 하지만 더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취약한 통치력이 가감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먼저 대중의 생각과 유리된 판단 문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대통령의 판단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명품 백 문제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핵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만한 두툼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 그것을 깨야 한다”고 했다. 그 벽이 어느 쪽에 있나. 그게 문제다. 한 위원장이 사퇴하면, 다른 대안은 있는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 대통령의 국정 원칙도 의심받고 있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후안무치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국민은 명품 백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주시하고 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합리적 중도층이) ‘명품 백 수수’ 의혹 이후 윤 대통령을 향한 태도가 많이들 바뀌고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고 말했다. 원칙이 훼손되면 신뢰가 깨지고, 국정의 초석이 무너진다.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눈 녹듯 사라졌다.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갈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마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친윤 이용 의원이 “용산이 한 위원장 지지를 철회했다”고 의원 단체방에 올렸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위원장에게 민심과 명분이 있다”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질책이 돌아왔다. 이렇게 공천권은 물론 당권이 한 위원장에게 넘어갔다.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에게 더 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예외가 없었다. 남은 3년을 어떻게 통치할지, 윤 대통령은 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명품 백 문제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용 프레임이며, 이런 마타도어(흑색선전)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견해도 강력하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국민은 무엇을 기대하나? 정치가 매 순간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어떤 정치도 국민을 앞설 수 없다. 이 결정적 순간의 선택이 잘못되면, 가까이는 총선, 그리고 2027년 대선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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