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도로 수놓던 ‘붉은 질주’… 그 강렬함이 아직 선명하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8기통 엔진에 400마력으로 독보적 위치
2년간 272대만 한정 생산해 희소성 높아
작년 경매서 한화 53억 원에 낙찰되기도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슈퍼카로 인정받는 차들은 존재한다. 보편적 기준을 넘어서는 절대적 고성능과 더불어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 탄생 배경을 비롯한 매력적인 스토리,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희소성 같은 요소를 두루 갖춘 차들이 그렇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당대 일반 스포츠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차들은 늘 있었다.
슈퍼카라는 표현은 이미 1920년대부터 쓰였고, 현대적 슈퍼카의 기준점이 된 람보르기니 미우라가 1966년에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슈퍼카라 불리는 차들은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기준이 점점 더 높아졌을 뿐이다. 즉 슈퍼카는 스포츠카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 자리에 있는 소수의 차로 환경이 바뀌는 가운데에도 경쟁을 거치며 권위와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를 차지하는 차들인 셈이다.
GTO는 1984년 3월에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페라리가 발표한 공식 모델 이름은 GTO고, 실제로 차체 뒤에 붙은 모델 이름 엠블럼도 간단히 GTO라는 글자로만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차를 288 GTO라고 부르는데 이는 페라리가 1962년에 내놓은 250 GTO와 구분하기 위해 자동차 애호가들이 썼던 표현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페라리가 차 이름에 GTO라는 표현을 쓴 것은 2010년에 나온 599 GTO를 포함해 모두 세 모델뿐이다.
288이라는 숫자는 엔진 배기량인 2.8L에서 가져온 28과 엔진 기통 수를 뜻하는 8을 붙여 쓴 것으로 당시 보편적인 페라리의 모델 이름 명명법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페라리는 이에 맞춰 GTO를 최소 기준인 200대만 생산할 계획이었다. 원래 목표는 그랬지만 개발 과정에서 페라리는 GTO의 성격을 바꿔 그룹 B 경주에는 출전하지 않고 일반 도로용 스포츠카로 한정 생산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2년에 시작된 그룹 B 랠리 경주가 지나친 성능 경쟁으로 치명적 사고가 잇따른 탓에 불과 4년 만에 폐지됐으니 페라리의 빠른 노선 전환은 결과적으로 GTO를 더 특별한 차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차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GTO의 디자인은 당시 판매되고 있던 페라리의 V8 엔진 모델인 308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우람하고 강력한 분위기였다. 몇몇 부품을 308과 공유하기는 했지만 차의 구조는 대부분 GTO 전용으로 설계됐고, 엔진도 탑승 공간 뒤쪽에 가로로 배치된 308과 달리 세로 방향으로 배치됐다. 근육질 느낌이 물씬한 바퀴 주변과 더불어 날카롭게 솟구친 차체 일체형 스포일러와 뒷바퀴 뒤쪽 공기 배출구는 20여 년 전에 처음으로 GTO라는 이름이 쓰인 250 GTO를 연상케 했다.
수요는 예상을 훨씬 웃돌아 198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기 전에 이미 주문 대수가 계획했던 생산량을 넘어섰다. 넘치는 수요에 1986년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마라넬로 공장을 떠난 GTO는 모두 272대에 이르렀다. 차체 색은 페라리 모터스포츠를 상징하는 빨간색 중 하나인 로소 코르사뿐이었다. 출시 당시 기본값은 8만3400달러였다. 당시 환율로 약 6720만 원인데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억6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53억 원이 넘는 396만5000달러에 낙찰되는 등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GTO에서 시작한 페라리 슈퍼카 계보는 이후 F40, F50, 엔초 페라리, 라페라리로 이어졌다. 모두 한정 생산됐지만 그 가운데 생산량이 가장 적은 모델이 GTO였다. 나아가 GTO는 1980년대 중반부터 치열해진 슈퍼카 경쟁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GTO의 뒤를 이어 나온 엔초 페라리의 유작 F40, 16년간 이어진 람보르기니 쿤타치 발전의 정점인 LP5000S 콰트로발볼레, GTO처럼 그룹 B 경주차로 기획됐다가 일반 도로용 승용차가 된 포르셰 959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성능과 스타일 면에서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와 더불어 슈퍼카의 기준점도 점점 더 높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40년 전에 등장한 페라리 GTO는 슈퍼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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