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보석의 왕’ 다이아몬드, 연구실에서 만들 수도 있어요
4주간 탄소 원자 쌓아서 만들어
환경-윤리 문제 없고 가격도 저렴
천연 다이아몬드, 환경 파괴 심하고… 아프리카 등 노동 착취 문제도 논란
● 다이아몬드가 환경 파괴의 범인?
2021년 덴마크 보석업체 판도라는 더 이상 천연 다이아몬드를 팔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판도라는 연간 5만 개의 다이아몬드를 판매하는 세계 최대 귀금속 브랜드예요. 판도라가 이런 선택을 한 건 다이아몬드를 캐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와 노동자 인권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때는 환경이 파괴됩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구 맨틀 속 마그마에서 만들어져요. 그래서 다이아몬드 광산은 주로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분출되며 형성된 분지에 있지요.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위해선 이 분지를 파내 거대한 공사장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2021년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 환경정책학과 그베미 올룰레예 교수는 “다이아몬드 1캐럿(0.2g)을 채굴하는 데 108.5kg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밝혔어요. 전 세계에서 연간 대략 1억5000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채굴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 자동차 350만 대가 내뿜는 탄소 배출량(약 1600만 t)과 맞먹습니다. 노동 착취 문제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어요. 다이아몬드를 캘 때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데, 주로 아프리카 등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이 광산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까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등에서 활동한 반정부 무장 세력들이 광산을 둘러싸고 내전을 벌이며 주민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는 모습을 빗대 ‘블러드 다이아몬드’, 즉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말까지 생겨났지요.
이후 여러 보석 업체는 천연 다이아몬드를 팔지 않겠다고 나섰어요. 그렇다면 다이아몬드를 더 이상 볼 수 없을까요? 대안은 바로 ‘랩그론 다이아몬드’예요. 연구실(랩·lab)에서 성장시켰다(그론)는 뜻이지요.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KDT 다이아몬드의 강성혁 실장은 “환경이나 인권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밝혔습니다.
● 4주간 자라는 ‘다이아몬드 씨앗’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20세기 중반에 개발된 ‘고온고압법’을 이용했어요. 고온고압법은 천연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마그마의 높은 온도와 압력을 모방한 방법이에요. ‘챔버’라고 불리는 거대한 장치 안에 정육면체의 작은 공간인 ‘큐브’를 만듭니다. 큐브 속에는 탄소를 공급할 흑연과 마그마를 닮은 뜨거운 액체 금속이 들어 있어요. 흑연에서 나온 탄소는 액체 금속을 타고 내려와 다이아몬드 씨앗에 붙으며 4주에 걸쳐 원석으로 거듭납니다.
고온고압법으로 탄생한 원석은 광택이나 투명도 등에서 보석용으로 사용하기엔 품질의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주로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사용되지요. 원석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1990년대에는 ‘화학기상증착법(CVD)’이 개발됐습니다. 화학기상증착법은 진공 상태의 챔버에서 플라스마로 메탄 가스를 분해해 다이아몬드 씨앗에 탄소 원자를 한 층씩 쌓아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고온고압법과 달리 동시에 100여 개의 다이아몬드를 키울 수 있어요.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환경 및 윤리 문제가 없고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5분의 1 정도로 저렴해요. 송오성 서울시립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자연의 고드름과 냉동실의 얼음처럼 동일한 물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보석이 되기 위한 원석의 여정
지난해 10월 17일 랩그론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석으로 연마 중인 서울 종로의 KDT 다이아몬드 작업장에 다녀왔습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실험실에서 만들지만 보석이 되려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해요.
“윙∼ 윙∼.” 연마실에 들어서자 연마사들이 다이아몬드를 깎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도에서 온 숙련된 기술자들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모양을 내고 있었어요.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는 ‘연마’ 작업이었지요.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선 ‘플래닝, 1차 디자인, 연마, 라운딩, 품질 검증’의 총 5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실험실에서 랩그론 다이아몬드 원석을 만들면 스캔 프로그램으로 원석의 입체 구조를 스캔해요. 원석은 비싸기 때문에 가공 중 버려지는 부분이 가장 적게 설계하기 위한 플래닝 과정이죠. 플래닝이 끝나면 레이저 기계가 보석을 목표하는 모양의 70% 정도로 원석을 깎아 1차 디자인을 해요. 이후 연마사들은 레이저로 깎인 원석을 섬세하게 세공하고, 라운딩 기계로 매끄럽게 다듬습니다. 마지막으로 품질을 확인하면 원석이 마침내 보석으로 탄생합니다.
● 전문가도 눈으로는 구분 불가능해요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전문 보석감정사조차 눈으로 구별할 수 없어요. 둘은 탄소로 구성된 완전히 동일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어요. 바로 질소의 함량입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100∼1000ppm 정도(1ppm은 ‘100만분의 1’)의 질소가 들어 있어요. 반면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질소가 100ppm 이하로 함유되게 만듭니다. 질소가 많이 섞일수록 다이아몬드의 색이 갈색을 띠거든요.
랩그론과 천연 다이아몬드를 확실히 구분하려면 다이아몬드에 자외선을 비추는 ‘형광반응’이 필요합니다. 상대적으로 자외선을 많이 흡수하면 천연 다이아몬드, 조금만 흡수하면 랩그론 다이아몬드예요. 형광을 비춘 후 컴컴한 암실에 놓고 발광 색상으로 구분하는 거죠. 천연 다이아몬드의 발광 색상은 파란색인데,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연두나 주황 등 다양한 색을 냅니다.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찾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어요. 강성혁 실장은 “매장을 찾는 소비자의 절반 정도가 천연 다이아몬드를 보러 왔다가 랩그론으로 선회한다. 이전보다 다이아몬드 수요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어요.
박동현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idea10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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