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 아시아 최초 ‘클래식 음악계 노벨상’ 품었다
지난해 8월 말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작곡가 진은숙(63)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단 여기엔 조건이 있었다. “음악상을 주관하는 재단에서 공식 발표할 때까지 절대 주변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비밀 유지 조항’이었다. 진은숙은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참느라 혼났다. 어디 대나무 숲이라도 있으면 달려가서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웃었다.
진은숙이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25일 드디어 공식 발표됐다. 1974년 설립된 이 상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등 당대 최고 음악인들이 차례로 받았다. 아시아 음악인이 이 상을 받는 건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진은숙은 “20여 년쯤 뒤에나 받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시아 음악가로는 처음 받게 됐다는 소식에 더욱 놀랐다”고 했다.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 재단은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들의 성공을 통해서 진은숙은 현대음악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전 세계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 상은 지멘스 창업자의 손자이자 이사회 의장을 지낸 에른스트 폰 지멘스(1903~1990)의 이름을 딴 재단에서 1974년부터 매년 1명씩 시상하고 있다. 상금은 25만유로(약 3억6000만원)이며 시상식은 5월 1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다.
이 상의 무게감은 역대 주요 수상자의 면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첫해인 1974년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75년), 지휘자 카라얀(1977년)과 번스타인(1987년),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바렌보임(2006년) 등이 차례로 받았다. 음악학자 이희경씨는 “지멘스상은 작곡뿐 아니라 연주와 평론까지 모든 분야를 통틀어 음악계 최고 거장들에게 돌아가는 상”이라며 “지금도 세계 음악계에서 많은 작품이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는 진은숙의 음악적 위상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은숙의 스승인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1923~2006) 역시 1993년 이 상을 받았다. 31년 만에 사제(師弟) 수상 기록을 작성하게 된 셈이다. 진은숙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함부르크 음대에서 리게티를 사사했다.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동생이고 미학자 진중권의 누나다.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으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현대음악 시리즈 예술감독 등을 지냈고 2022년부터 통영 국제 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고의 명문인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진은숙의 관현악과 협주곡을 녹음한 ‘진은숙 에디션’ 음반 세트를 펴냈다. 하지만 진은숙은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기는 하지만, 상(賞)을 하나 더 받는다고 더 좋은 작곡가가 되는 건 아니다. 작곡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내년 5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초연 예정인 신작 오페라를 쓰는 중이다. 그는 “되도록 모든 일정과 약속을 줄이고 작곡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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