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문화 수용의 척도 ‘향신채’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연경(베이징)으로 가던 조선 연행사들은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몹시 고생했다. 쌀은 찰기라곤 없어서 밥을 지어도 먹을 수가 없었고 다른 반찬들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쫄쫄 굶주리고 있던 상황을 단번에 구원해 준 것은 마침 항아리에 저장해 가져간 조선식 무장아찌였다. 연행사 일행은 신분의 아래위도 잊은 채 모두 무장아찌에 의지해 느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연행 일정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연행사들은 중국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중국 특유의 향신채인 샹차이(香菜)의 향내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문화이든 특유한 향신채가 있다. 우리나라의 깻잎처럼 독특한 향이 있는 중국의 샹차이는 꽤 진입 장벽이 높지만 마라탕의 유행으로 인해 이제 우리에게 훨씬 가까워졌다.
샹차이에 비견될 만한 일본의 향신채로는 시소(シソ)가 있다. 헤이안 시대 단노우라(壇ノ浦) 전투에서 어린 안도쿠(安德) 왕이 바다에 투신하자 왕의 어머니는 슬픔 속에서 홀로 살아가게 됐다. 이때 고운 보랏빛의 시소 절임은 아들 잃은 어머니를 달래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소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시소를 즐기는 경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소 하이볼 등의 유행으로 인해 시소조차도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즉 타 문화 향신채의 장벽을 넘는지의 여부는 타 문화 수용도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비단 중국과 일본 음식뿐이 아니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즐겨 먹는 방앗잎은 다른 향내를 모두 밀어낸다는 의미의 배초향(排草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샹차이·시소보다 더 향이 강한 방앗잎은 일명 정구지찌짐이라 하는 부추전에 들어가면 그 향이 증폭된다. 그래서 정구지찌짐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남부 지방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향신채는 인간에게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타 문화 수용의 척도이고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단계에 왔다. 향신채가 그러하다면 그 외의 것을 포용 못할 게 없다. 오래전 무장아찌 없으면 무조건 굶주리는 답답한 지경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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