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낙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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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식사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그 중 김밥은 속 재료가 다양하고 영양이 풍부한 인기 식품이다.
전국 생산량의 3% 수준에 그치지만 부산 강서구 '낙동김'은 고급김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지난달 낙동김 위판량( 302만5560㎏)이 3년새 50% 이상 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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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식사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그 중 김밥은 속 재료가 다양하고 영양이 풍부한 인기 식품이다. 지난해 한 중소기업이 수출한 냉동 김밥이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해 8월 미국에 냉동 김밥 100만 개(250t)를 수출했는데 틱톡에 소개되면서 품절 행진을 일으켰다.
김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1980년대만 해도 전용 솔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묻혀 김에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게 겨울 연례행사였다. 신선식품이 부족했던 당시 김은 비타민 공급을 책임졌다. 1986년 동원F&B가 조미김인 ‘양반김’을 출시하면서 김은 더욱 대중화됐다. 김은 보통 10월 하순부터 다음 해 4월 초까지 채취한다. 겨울이 제철이다.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 본격적인 김 양식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김여익이 시작했다. 1640년 전남 광양 태인동 앞바다에 떠다니는 나뭇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맛본 뒤 양식에 나섰다. 그의 성에서 유래해 ‘김’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김이 비싸고 귀한 식품이었다. 본격적인 김 양식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우리나라 김 수출이 지난해 1조 원(7억7000만 달러)을 돌파하며 K-푸드의 선봉장이 되고 있다. 전국의 김 양식 면적은 약 600㎢로, 부산시 면적(993㎢)의 3분의2에 달한다. 생산량의 80%는 진도 해남 완도 등 전라남도 지역이 차지한다. 전국 생산량의 3% 수준에 그치지만 부산 강서구 ‘낙동김’은 고급김으로 정평이 나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의 알맞은 염도 덕분에 김 빛깔이 검고, 윤기가 흐른다. 낙동김의 근대적 양식은 1910년 시작됐다. 1971년 김 양식 전문업체인 ‘삼흥수산’이 선진 양식법과 재배 기술의 기계화로 낙동김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지난달 낙동김 위판량( 302만5560㎏)이 3년새 50% 이상 줄었다고 한다. 김 작황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어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강서구가 낙동김 생산량 급감 원인을 파악하고자 전문기관에 수온과 수질, 김 종자 검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전문기관들도 뚜렷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묵과 함께 부산 대표 수출상품이었던 낙동김의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부산시도 나서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후 요인이라면 이에 맞는 새 품종 개발도 필요하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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