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추락사, 범인은 아내? 칸 황금종려상 받은 ‘부부의 법정’
눈 덮인 알프스의 고요한 별장에서 남편이 추락사했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사고일까. 그날 남편과 다툰 아내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유일한 목격자인 시각장애인 아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 여느 추리 소설의 도입부처럼 매혹적으로 시작되는 영화 ‘추락의 해부’는 훌륭한 영화들이 그렇듯 기분 좋게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평범한 추리 영화에선 사건을 해부하듯 낱낱이 파헤치면 끝내 진실이 통쾌하게 드러나지만, 이 영화는 관객이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을 모아 얼기설기 꿰매야 겨우 진실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남편 사뮈엘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밝히기 위해 평소의 부부 관계가 법적인 쟁점이 된다. 검사는 아내 산드라에게 범행 동기가 있음을 증명하려고 아픈 가족사와 부부의 사적인 대화, 성생활까지 물고 늘어진다. 소설가였던 사뮈엘과 산드라는 서로에게 동료, 친구, 애인이자 경쟁자, 방해자였다. 법정에선 부부가 오랜 세월 쌓아온 존경과 사랑은 증거로써 효력이 없고, 단 몇 분짜리 녹음 파일 속 서로를 향해 내뱉는 독설과 거친 몸싸움 소리만이 유효하다.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46)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역사상 세 번째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됐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 산드라는 모성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차갑고 야망 있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열패감을 느껴왔고, “남편이 실패한 일에 성공한 죄”로 산드라의 사회적 성취는 법정에서 번번이 불리하게 작용한다.
트리에 감독과 남편 아르튀르 하라리가 코로나 기간 두 아이를 번갈아 돌보며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더없이 솔직하며 날카롭게 벼린 대사들로 ‘부부의 세계’를 낱낱이 해부한다. 때로는 청각 정보를, 때로는 시각 정보를 생략하면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솜씨도 능수능란하다.
관객은 저마다 판사가 되어 영화 속 인물들을 의심하고 관계 파탄의 책임이 누가 더 큰지 저울질하게 된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관계의 문제에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하긴 하는지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 것이다. 판결이 나고도 산드라에게 죄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주연 배우인 산드라 휠러마저 촬영 직전 감독에게 “그래서 남편을 죽였냐, 안 죽였냐”고 물어봤고, 감독은 “결백한 사람처럼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단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꼿꼿이 자신을 변호하던 산드라가 무너질 때, 팔짱 끼고 그를 평가하며 보던 이들도 같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독일 배우인 산드라 휠러는 무뚝뚝한 얼굴로 수치심과 강인함, 죄책감과 외로움을 수백 번 오락가락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될 만하다.
영화는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잡으며 ‘기생충’과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골든글로브 각본상·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5부문 후보에 올랐다. 북미에서 ‘기생충’을 배급한 영화사 네온이 배급을 맡아 500만달러 이상의 티켓 수입을 기록, 적극적인 오스카 캠페인까지 펼치고 있다. 흥행은 부진했던 과거 황금종려상 수상작과 달리 프랑스에서만 100만명이 관람하며 꺼져가던 프랑스 예술 영화 시장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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