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13] 큰소리치다 큰 소리 들을라

양해원 글지기 대표 2024. 1.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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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유리창에 이틀 내리 성에가 끼었다. 햇살을 못 이기고 달아났나 싶던 물 분자(分子)가 이튿날 새벽 다시 모여들었다. 과연 북극 한파라더니. 바람이 초속 2미터로 불면 영하 10도일 때 체감온도는 영하 14도란다. 초속 3미터면 영하 16도, 초속 4미터면 영하 17도. 찬 바람만 안 불어도 겨우살이가 덜 스산하련만. 아차, ‘찬바람’이라 써야 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바람이 문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찬바람’을 이렇게 풀이한다.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른 상당수 사전과 달리 ‘차가운 바람’이라는 뜻은 아예 없다. 그냥 한 낱말 ‘찬바람’으로 쓰면서 문맥 따라 구별해도 되겠구먼. 아무튼 우리 몸뚱이를 차갑게 하는 바람은 ‘찬 바람’으로 표기할밖에.

이게 심하면 ‘매운바람’이 된다. ‘살을 엘 듯이 몹시 찬 바람’ 말이다. 하도 차가워 눈을 아리게 한다 할 땐 ‘눈이 매운바람’(1)일까 ‘눈이 매운 바람’(2)일까. 이때 ‘매운’은 ‘눈’의 서술어라서 2처럼 써야 옳다. 1은 ‘눈이 보배’처럼 눈과 매운바람이 동격(同格)이라 어색할뿐더러 문맥에도 맞지 않는다.

‘찬바람’ 비슷하게 띄어쓰기 알쏭달쏭한 말이 ‘큰소리’다.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간추려 보자. ‘목청 돋워 야단치는 소리. 잘난 체하며 장담하거나 과장하는 말. 고분고분하지 않고 당당히 하는 말.’ ‘그저 소리가 크다’는 뜻은 없다. 그런 쓰임새라면 ‘큰 소리’로 써야 한다는 말이다. ‘동생이 괜찮다며 큰소리를 치는데 큰 소리가 나 내다보니 문짝이 쓰러져 있었다’는 식으로.

‘살길’이든 ‘살 길’이든 ‘사는 방도’를 나타낼 때는 그럼? ‘느긋하게 살 길을 꿈꿔 온 그의 삶은 느긋하지 못했다. 살길이 늘 어두웠기에.’ 첫 문장은 ‘삶이 느긋하지 못했다’ 했으므로, 살길을 느긋하게 찾은 게 아니라 ‘느긋하게 사는’ 길을 찾았다는 뜻. 그래서 ‘살 길’이다. 둘째 문장은 ‘살’ 앞에 꾸미거나 주체가 되는 말이 없으므로 ‘살길’로 씀이 옳다. 모든 이의 살길이 나날이 밝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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