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동·문현동…이중섭 그림 속 부산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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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흔적이 부산에 얼마나 있을까.
부산역전대화재로 사라진 이중섭의 그림이 150 여 점이었다니,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중섭의 그림에 담긴 부산이다.
어차피 각기 다른 주장이라면, 부산 영주동 어딘가에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던 판잣집 화실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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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란 때 가장 오래 머무른 부산
- 주목 끌만한 그의 흔적은 없어
- 화재로 150점 그림 사라지기도
- 책·회고담·기사 자료 이어 붙여
- 예술 열정 불태운 그의 삶 추적
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흔적이 부산에 얼마나 있을까. 이중섭은 1950년 12월 9일 6·25 전쟁을 피해 부산에 도착했다. 원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란을 온 것이다. 1956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서울 대구 등지에서 살았다. 부산에서 지낸 기간은 거의 2년이다. 그러나 부산에는 제주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크게 끌만 한 것이 없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부산이라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정석우의 ‘부산에서 찾아보는 이중섭 흔적’에서 그 의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중섭의 그림에는 통영에서 그렸다, 제주에서 그렸다는 설명이 붙곤 한다. 그렇다면 부산에서는? 이 책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이중섭은 유강렬의 초청으로 53년 11월 중순, 통영으로 가면서 부산 피란 시절 그렸던 작품을 유강렬 부인에게 맡겼다. 11월 말 부산역전대화재로 큰불이 나면서 유강렬의 집이 불탔고 이중섭 작품도 같이 타버렸다. (…)상상해 보면 이중섭이 통영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부산에서 화재로 불타 사라진 작품을 복원하려는 마음도 작용했을 것 같다.” 유강렬은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책임자였다. 부산역전대화재로 사라진 이중섭의 그림이 150 여 점이었다니,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저자는 2016년 봄, 우연히 부산 동구 범일동의 이중섭 거리를 마주하고 이중섭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피란민으로서 이중섭은 부산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화가로서 부산 어디서 무엇을 그렸을까. 가장으로서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을까. 저자는 책과 회고담, 기사 등의 자료를 모았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어 붙였다. 부산에서의 이중섭 흔적을 재구성한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전쟁 중의 부산과, 이중섭은 물론 그와 함께했던 예술가들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중섭의 그림에 담긴 부산이다. 책 표지로 쓰인 그림은 ‘범일동 풍경’이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범일동 풍경’은 이중섭이 범일동 판잣집(1497번지)에 살 때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흑백사진처럼 주로 검은색 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두운 느낌을 준다. 배경으로 멀리 희미하게 산이 보인다. 아마 수정산이나 만리산일 것이다. 가까이 언덕이 있고 듬성듬성 키 큰 나무 사이로 판잣집들이 담도 없이 서로 잇대어 있다.” 범일동에는 이중섭 전망대(범일동 1462-9)가 있다. 일명 마사코 전망대이다. 이중섭이 거주한 곳은 아니나, 범내골을 한눈으로 둘러보면서 이중섭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 카페 벽에는 “이중섭이 ‘범일동 풍경’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는 설명이 있다.
‘문현동 풍경’은 이중섭이 1952년에서 195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보낸 문현동 시절에 그렸을 것이다. 이중섭은 문현동의 성동중학교에서 멀지 않은 ‘돌산 기슭’, 문현삼성아파트와 문현여자중학교 근처 어딘가에 있었던 박고석의 판잣집에서 보냈다. 바람이 거센 곳이어서 몹시 추운 겨울을 나는 이중섭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판잣집 화실’의 배경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서울 신수동과 부산 영주동이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각기 다른 주장이라면, 부산 영주동 어딘가에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던 판잣집 화실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니 부산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을 따라 책장을 빨리 넘겨버렸다. 첫 페이지로 돌아가야겠다. 궁핍한 피란민 생활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이중섭의 흔적을, 그 발길을 차근차근 따라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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