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세 배우가 그리는 이 세상 소풍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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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손이 저절로 덜덜 떨리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누운 채 기저귀에 볼일을 보는 날이 생긴다.
눈 감으면 아직 포실한 열여섯 소녀인 것만 같은데 정신을 차리면 거울 앞에 앉은 건 주름살이 구불구불한 여든 노인이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는 세 배우가 그려낸 노인의 현실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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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고민 담아
OST 임영웅 자작곡 ‘모래 알갱이’ 화제
“나이마다 할 수 있는 연기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 역할은 김영옥과 제가 아니면 이만큼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주 현실과 가까운 작품이에요.” 2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소풍’ 기자간담회에서 나문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화는 서울 동대문에서 억척같이 일하며 재산을 모은 은심(나문희)이 60년 만에 고향 경남 남해에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혼자 아들 해웅(류승수)을 길러냈지만, 아들은 매번 사업에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은심의 집까지 담보로 대출해 달라고 조른다. 은심은 몸도 예전 같지 않다. 파킨슨병과 초기 치매 증상을 겪으며 근심이 더해가던 때, 평생지기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이 안 입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은심의 집을 찾는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은심은 금순에게 “고향에 내려가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금순의 집에 머물며 소풍 같은 시간을 보낸다. 어릴 적 은심을 좋아했던 태호(박근형)도 이들과 함께 열여섯의 마음으로 돌아가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하나둘 몸이 망가질 나이인 이들은 각자의 병을 알게 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는 세 배우가 그려낸 노인의 현실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허리가 좋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에 실수를 해버린 금순을 대야에 옮겨놓고 씻기는 은심의 모습이 눈물겹다. 하지만 영화는 ‘늙어감’을 안타까운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 안에는 여전히 깔깔대고, 샘도 내는 열여섯 소년 소녀가 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요양원에 간 친구가 손발이 묶인 채 존엄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고 은심과 금순이 하게 되는 고민은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모습이라 깊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영화에는 가수 임영웅의 자작곡 ‘모래 알갱이’가 OST로 쓰여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임영웅이 영화 OST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제작사 측에서 임영웅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 부탁했다고 한다. 김영옥 배우와의 인연으로 나태주 시인이 영화 헌정시를 지었다. “하늘창문 열고/여기 좀 보아요/거기는 잘 있나요?/여기는 아직이에요/이제는 아프지말기에요.”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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