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터로 뛰어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골프 트리비아]

김세영 기자 2024. 1.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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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의 PGA ‘아마추어 챔피언’ 닉 던랩 이야기
10대 이전에 클럽멤버 모조리 꺾고, 12세 때 59타
골프장 6번 홀 옆에 살면서 밤낮으로 연습에 매진
타고난 천재성에 노력 결합···평소 사슴 사냥 즐겨
닉 던랩이 자신이 잡은 사슴과 함께 찍은 사진. 그는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사슴 사냥의 제1 원칙은 사슴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고 했다. 닉 던랩 인스타그램
[서울경제]

“사슴 사냥의 제1 원칙은 사슴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3년 만에 탄생한 아마추어 챔피언 닉 던랩이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잡은 사슴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남긴 말이다. 그는 지난 23일(한국 시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쟁쟁한 프로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각각 PGA 투어 15승과 5승을 거둔 저스틴 토머스, 샘 번스와 경쟁하며 거둔 우승이라 더욱 빛났다.

던랩이 1991년 필 미컬슨(노던 텔레콤 오픈) 이후 아마추어 신분으로 PGA 투어를 정복하자 그의 성장 스토리도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던랩은 자연스럽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비교되기도 했다. 던랩은 2021년 US 주니어 아마추어와 2023년 US 아마추어를 제패했는데 이 두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던랩 둘뿐이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이 두 대회와 PGA 투어 정상에 오른 건 던랩이 유일하다.

던랩은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 성장했다. 그는 일찌감치 지역 사회에서 ‘골프 천재’로 이름을 떨쳤다. 던랩이 홈 코스로 삼았던 그레이스톤 골프 & 컨트리클럽의 헤드 프로 존 기번스는 “던랩은 10대가 되기도 전에 클럽 멤버를 모조리 이겼다”며 “던랩이 우승할 게 뻔해서 그가 대회에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불만을 들었다”고 했다. 던랩은 12세에 지역 대회에 나가 59타를 치며 13타 차이로 우승을 거두기도 했고, PGA 투어 프로를 상대로 돈을 따기도 했다.

던랩은 타고난 천재이자 노력파였다. 던랩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고 현재 그의 멘탈 코치를 하고 있는 브렛 매카이브는 “던랩은 어린 시절 매일 자전거를 타고 온 뒤 골프장 문이 닫히기 전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볼을 친 던랩은 집으로 돌아간 뒤 또 다른 ‘특훈’을 했다. 저녁에 다시 페어웨이에 나와 웨지 샷을 했던 것이다. 그의 집은 그레이스톤 골프장 6번 홀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매카이브는 “다음날 아침에 코스에 나가 보면 페어웨이 중간에 분화구가 있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부모가 극성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의 부모는 던랩에게 골프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들을 지지했지만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도록 했다. 그런 점에서 매카이브는 던랩이 매우 뛰어난 자기 동기 부여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추진력이 내부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던랩은 야구와 풋볼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매카이브는 “그의 가족이 미네소타에 살았다면 던랩은 아마도 매일 꽁꽁 언 호수에서 놀았을 것이고 아이스하키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앨라배마대 골프팀 코치인 제이 시웰은 “던랩은 체육관에 들어가는 첫 번째 선수고, 레인지에서 떠나는 마지막 선수”라고 했다.

던랩에게 그레이스톤 골프장은 이상적인 둥지 역할을 했다. 10명 이상의 투어 프로들이 이곳을 홈 코스로 삼았고, 콜린 모리카와나 맥스 호마를 고객으로 둔 티칭 아카데미도 그곳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한 반경 20km 이내에 여러 골프장들이 모여 있다. 유명 투어 프로들과 골프장이 있는 플로리다주 주피터와 비슷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그레이스톤 골프장에서 활동하고 PGA 2부인 콘페리 투어에서 뛰었던 제프 컬은 던랩의 멘토이자 친구였다. 그는 10살 꼬마 던랩을 데리고 다니면서 투어 프로들에게 소개해주고 그들과 라운드를 하게 해줬다. 던랩은 투어 프로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떻게 샷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체득했다. 던랩은 컬이 대회에 나갈 때 골프백을 멘 적도 여러 번 있는데 하루는 37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캐디로 동반한 뒤 3km 떨어진 체육관까지 뛰어가서 운동을 하고 온 적도 있다. 컬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고 했다.

던랩의 곁에는 때때로 마음을 다잡게 해줄 경쟁자도 있었다. 던랩의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았던, 한 살 위의 고든 사전트다. 둘은 종종 지역 대회에서 마주치곤 했다. 던랩은 지난해 US 아마추어 64강에서 사전트를 꺾은 뒤 우승을 했다. 사전트는 당시 “내가 누군가에게 질 거라면 최고의 선수에게 지고 싶었다”며 던랩을 높이 평가했다.

던랩은 이번 우승으로 PGA 투어 멤버가 될 자격을 얻었다. 당장 프로 전향을 하지 않더라도 지난해 US 아마추어 챔피언 자격으로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US 오픈, 디 오픈 등에 출전할 수 있다. 아래저래 던랩이 더 많은 트로피 사냥을 위해 PGA 투어에 뛰어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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