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뉴웨이브 in 강릉] 10. 거장 마이어가 끌어올리는 강릉 건축 미학

심상복 2024. 1.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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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으로 빚은 아름다움…지역 품고 세계로
백색 건축 거장 ‘ 리처드 마이어’ 설계
강릉 ‘솔올미술관’ 내달 14일 개관
9년 전 씨마크호텔 이어 두번째 작품
선·면 조화 미니멀리즘 표현 특징
‘루치오 폰타나’ 작품 개관전 장식
5월 ‘아그네스 마틴’ 전시 관심 집중
강릉아트센터·아르떼뮤지엄 더불어
문화도시 강릉 랜드마크 역할 기대
솔올미술관 조감도 외부 전경 ⓒ Meier Partners Architects

건축이란 한번 서면 보통 몇 십년간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런 구조물을 감각 없이 지으면 민폐가 되는 세상이다. 과거엔 기능을 중시했지만 웬만한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미학이 우위에 서는 이치다. 건축은 이미 공대를 졸업하고 디자인 계열에 편입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덕분에 작품급 건축이 늘어나는 추세다. 내달이면 강릉에 그런 건물이 하나 더 추가된다. ‘백색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리처드 마이어(90)가 이끄는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미술관이다. 마이어는 2015년 개관한 경포 해변의 씨마크호텔로 한국에 처음 데뷔했다. 동해안 아담한 도시 강릉에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국내 건축계와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솔올미술관 개관전의 주인공은 ‘공간주의’를 창시한 이탈리아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로 정해졌다. 폰타나는 공간에 대한 탐험과 실험으로 공간을 예술로 끌어올린 조각가 겸 화가다.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은 “2월 14일 개관하는 폰타나전은 4월14일까지 두 달간 이어진다”고 말했다.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강릉 교동 7공원에 들어서는 솔올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3221㎡ 규모다. 전체적인 구도는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따왔다고 한다. 중앙 안뜰을 중심으로 세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기획전시를 하는 대형 파빌리온과 수장고, 사무실, 도서관을 품은 깔끔한 ‘큐브’, 그리고 정문과 로비, 카페, 아트샵이 있는 투명한 파빌리온이다. 미국 뉴저지주 태생인 마이어는 코넬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1963년 뉴욕에 첫 사무실을 냈다. 1984년 쉰이 안 된 나이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의 정통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건축은 백색과 미니멀리즘으로 압축된다. ‘리처드 마이어의 30가지 색’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흰 건물이 시간에 따라, 태양광의 각도와 조도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색으로 연출될 수 있는지 역설한다.

솔올

▲ 루치오 폰타나 작, ‘Ambiente spaziale con neon’

미술관도 흰색이다. 백색의 정갈함과 건축물의 미니멀한 선과 면이 만나는 단아한 조화는 마이어가 추구하는 가치다. 그 결과 조형미를 살린, 정적이고 기품있는 공간을 창조해 낸다. 마이어 파트너스는 주요국에 다양한 건물을 설계했는데, 그중 미술관만 보면 애틀랜타의 하이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LA의 게티센터(1997)등 열 곳쯤 된다.

솔올미술관은 앞으로 세계 미술과 활발히 소통함으로써 문화도시 강릉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적 소임은 강릉아트센터가 이미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 13일엔 오스트리아 빈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를 초청, 신년음악회를 열었다. 아트센터는 또 19일 개막, 2월 1일 폐막하는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 대회 기간에도 78개국 젊은이들을 위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지난 20일 ‘2024 꿈의 오케스트라 강릉-소망과 꿈을 모아서’, 23일 국립현대무용단의 ‘HIP合’, 25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을 진행한데 이어, 26일 국립합창단 공연, 27일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여행’, 29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전통무용 & 전통연희’, 31일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해적’ 등이다.

아트센터가 강릉시향을 앞세워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미술은 뒷전이었다. 시립미술관이 있긴 했지만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러다 2021년 12월 경포호수 인근에 아르떼뮤지엄이 등장하면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제 솔올이 가세하면 예술적 생기가 더욱 번져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4월에 폰타나 개관전이 끝나면 캐나다 출신 미국 화가인 아그네스 마틴의 기획전시회가 5월4일부터 8월25일까지 이어진다. 이 전시회는 런던의 유명한 테이트 모던 관장인 프란시스 모리스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미술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솔올미술관은 같은 대지에 롯데아파트를 짓는 민간 시행사가 지어 강릉시에 기부채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미술관 운영에는 상당한 공백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10월부터 미술관 운영이 관(강릉시)으로 이관되는데, 이로 인해 김석모 관장은 마틴 전시회가 끝나면 물러난다고 한다. 문제는 후임이 아직 선정되지도 않았고 시가 편성한 올해 예산도 없다. 세계적인 거장을 모시려면 보통 2년은 작업해야 하는데, 올 9월부터는 ‘개점휴업’ 상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술관 운영은 전문가 영역인데 자칫 정치나 외부 요인에 휘둘리면 건물값이 아까운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관계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 강릉 씨마크호텔 전경

어쨌든 솔올미술관의 탄생으로 씨마크호텔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씨마크는 지하 4층에 지상 15층,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다. 객실은 150개다. 경포 바다의 수평선과 합을 이루는 5층의 수영장은 호텔의 백미다. 이곳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호텔현대 경포대를 헐고 새로 지은 것이다. HD현대(전 현대중공업그룹)는 2017년 호텔현대를 매각하면서 여기만 제외했다. 창업주가 신입사원들과 연수회를 하면서 경포 백사장에서 씨름하던 기억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안로를 코앞에 두고 바다와 거의 닿아 있는 이 호텔은 언덕에 사뿐히 올라앉아 넓은 가슴으로 바다를 가득 안고 있다. 이 건물 역시 백색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 색채를 호텔 창과 흰 벽에 그대로 투영한다. 객실은 대부분 바다를 향하고 있지만 경포호수를 보는 시선도 좋다. 고즈넉한 낮 풍경과 달빛에 일렁이는 잔물결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동지역 최대 기업으로 부상한 파마리서치도 현재 강릉의 명소가 될 건축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아직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일을 맡길 건축가는 이미 정했다고 한다. ‘심플한 건물에 깃든 자연미’의 건축가 조병수씨다.

사실 멋진 빌딩은 자본과 식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감도 상으로는 근사해 보이는 건물이 예산 부족이나 건물주의 간섭으로 아쉬운 결과에 이르는 경우도 꽤 있다.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사옥(영국 출신 데이비드 치퍼필드 설계) 같은 빌딩을 강릉 같은 소도시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 주택을 지어도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게 뽑아낼 건축가는 국내에도 적지 않다. 그런 작은 작품 하나하나가 더해져 강릉이란 도시가 더욱 우아하고 품위 있게 서는 날을 그려본다. 컬처랩 심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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