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 만난 ‘동포’가 반가워하지 않을 때[폴 카버 한국 블로그]
17년 전 한국으로 이주해 오기 전에 내가 살았던 영국 동네의 한국인 인구가 50명쯤 되었는데 내 식구처럼 영국인과 결혼해서 이민 온 가족이나 어학연수생들, 석박사 과정에 있던 학생들과 그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학기마다 졸업해 귀국하는 학생들과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 사이에 가구나 자동차가 속히 중고 거래돼 새로 정착하게 된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에 다 함께 모여 서로에게 대리 가족이 되어 주기도 했다. 타국에서 이런 한국인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일처럼 여겨지기는 했지만 모든 한국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분들은 행사에 한두 번 얼굴을 비치고는 귀국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다시 뵌 적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외국인 커뮤니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대부분의 교류가 온라인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전과는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고, 영국인뿐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한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성격이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정기적인 채팅으로 한국 생활의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남긴 물품이 싼값에 거래된다는 점에서는 그 성격이 같다. 그리고 태국에서의 저 사례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야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려서 갈등할 필요는 없는데 도시 외곽지역에서 다른 외국인을 맞닥뜨리면 우리가 소수이고 외모가 달라서 좀 더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서로에게 알은체해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갈등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문화가 아니라서 나는 대부분 그냥 지나가고 말기는 하지만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 가게 되거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마주칠 때 상대가 인사를 해오면 어색하게나마 나도 인사를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권에서 온 외국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나 같은 다소 퉁명한 태도는 불쾌한 행동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행동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150여 개국에서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다양한 목적을 갖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현재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중 두 명이 한국의 어떤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공통점이라고는 한국 여권이 없다는 것이 전부일 텐데도,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인지라 타국에서 우연히 마주친 외국인이 내 사돈의 팔촌의 사위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여행 기간 중 우연히 만난 ‘동포’와 절친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서로에게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그러나 그 동포에게 설사 안부 인사를 거부당했을지라도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듯하다. 인종과 국적을 떠나 세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도 내향적인 사람도 모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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