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향한 애정어린 시선… 감각적 화풍에 오롯이

김신성 2024. 1. 2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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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리·린지·이소을 ‘Hello 2024!’ 展
유혜리, 사막·하늘서 헤엄치는 물고기
고달프지만 소중한 삶 우화적 묘사해
린지, 찰나의 감정·일상의 순간 포착
밝은 색조합 긍정의 기운 가득 채워
이소을, 산신령 같은 ‘미묘해’씨 통해
사람과 동물의 공존 섬세하게 표현

어찌된 영문인지 바다나 어항이 아니라, 숲 또는 선인장 가득한 사막, 하늘 등 낯선 공간에서 헤엄을 친다.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상반되는 이미지들을 같은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시각적인 재미를 배가한다. 특히 물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물고기들과 메마른 사막을 상징하는 선인장을 대비함으로써 아이러니한 간극을 조성해 미시감을 부여한다. 이 같은 이미지 차용은 가시 돋친 고된 세상을 상징하려는 것이다. 날마다 살아내기 고달픈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 유혜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 관계에 관심을 두고 동물 이미지를 빌려 은유적으로 그려내길 즐긴다.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드로잉 작업과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해 표현영역을 확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물고기 이미지로 작업한 지는 벌써 9년이 넘었다.
이소을, ‘드립커피’(2023)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키우던 열대어도 세상을 떠났다. 물 위에 뜬 죽은 물고기를 보면서 ‘물고기의 삶도 인간과 다르지 않구나’란 생각을 했다는데, 그날 이후 물고기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물고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우화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기억을 물고기라는 주체로 형상화하고, 현실과 환상 사이를 유희하면서 삶을 새롭게 응시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인물로 직접 표현했을 때 받는 자극보다는 동물에 빗대어 담아낸 삶의 이야기가 유쾌한 마음을 더욱 크게 키워, 마치 이솝우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남기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우화처럼 밝고 재미나지만 이면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을 내포하고 있다.

작품 속 물고기들은 각양각색 무늬와 색을 띠는데 다양한 종류의 인간을 상징한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물고기가 탄생하고 죽는 과정은 인간들의 생과 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물고기들은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고민하게 해주는 주체가 되며, 바라봄의 대상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으로 변화해 친숙한 동물이 된다.
유혜리, ‘꿈의 무게, 숨바꼭질, 꿈, 꼬리잡기’(2023)
특히 원근감을 없애고 평면에 2차원으로 보이게 해, 각각의 이미지 자체에 더욱 시선이 가도록 유도한다. 원근감의 소실은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강조되는 포인트를 제거하고, 눈길이 전체에 분산되도록 해방시켜 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가 소중하다’는 뜻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그의 시선은 물고기 이미지에 투영되어 어느 하나도 하찮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처럼 보여지길 바라고 있다.

그는 자신과 내면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관계의 회복과 삶을 다시 정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단단해지는 ‘나’와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내면을 인지하고 세상을 바라볼 때, 날마다 감사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도 회복하리라 믿는다.”
린지, ‘Three Figures’(쓰리 피겨스. 2022)
유혜리, 린지, 이소을 3인의 작가가 마련한 전시회 ‘Hello 2024!’(헬로우 2024!)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화랑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자연과 동물을 주제로 작업하는 이들은 감각적인 화풍으로 관람객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한다.

린지는 지속되었으면 하는 찰나의 감정이나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낸다. 상상이 동반된 배경과 상황 속 캐릭터들은 작가를 대변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입이 없거나 최소화된 그들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직접 설득하기보다 관객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는 ‘듣는 이’로 존재한다. 친숙한 일상의 소재는 작품 속으로 편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넉넉한 틈을 제공하고, 밝은 색조합은 따뜻한 질감으로 긍정적인 기운의 공명을 일으킨다. 별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짙게 전한다.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이소을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숲속뿐만 아니라 도시에도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이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그림에 듬뿍 담아낸다. 그의 작품 속엔 자연을 지키는 산신령 같은 존재 ‘미묘해’씨가 등장한다. 한지에 아크릴물감으로 섬세하면서도 선명하게 표현한다. 언제나 평화로운 초록의 미묘해씨 숲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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