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말고 정책] 과도한 집값·사교육비에 고용 불안까지…경제구조 개혁 없인 초저출생 해법도 없다
경향신문·경실련 10대 총선 의제
정부, 아동 현금 지원·돌봄 서비스 개선·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 대책 내놓지만
결혼한 가구 위주 정책들…성공 거두더라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022년에 0.78명을 기록했다. 즉, 여성 1명이 가임기에 0.78명을 출산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일 뿐 아니라 홍콩을 제외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960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인구구조 고령화 역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유엔의 인구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46년부터 일본을 넘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 되며, 2062년에는 홍콩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고령화 원인을 50년 시계에서 분해한 연구를 보면, 저출생이 70% 그리고 기대수명 연장이 30% 각각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저출생이 고령인구 비중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이와 같은 초저출생이 지속된다면, 노동인구 감소 등으로 실질 성장률이 떨어지고, 세대 내의 불평등 수준이 높은 고령층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반의 불평등도도 높아지고, 노인빈곤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것이 자명하다.
물론 역대 정부도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의 ‘가족 관련 지출(family benefit spending)’ 비중이 높은 선진국의 출산율이 높다는 사실과 가족이나 출산과 직접 관련된 정부 예산은 여전히 낮다는 비판을 수용해, 최근에는 아동에 대한 현금 지원, 아이 돌봄 서비스 확대, 보육시설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 육아휴직 급여와 지급 기간 확대 등을 저출생 대응 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기조에서 여야도 총선 공약으로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는데, 양당 모두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고 육아휴직을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면서, 여당은 기업 지원과 남성에, 야당은 주거 지원 대책에 방점을 찍어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모두 결혼해 가정을 꾸린 부부의 출산과 양육 지원책 위주이다. 이철희 서울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발생한 출생아 수 감소의 약 85%는 결혼의 감소로 인한 것이었는데, 25~39세 여성 중 결혼한 여성의 비율은 1991년 87%에서 2021년 43%로 떨어졌다. 결혼한 인구의 비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결혼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국 초저출생의 원인으로, 과도하게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및 양육 불안 외에도,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 압력 그리고 고용 불안 등이 지속적으로 지목되어 왔다. 초저출생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을 정치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전속적 하청구조에서 발생하는 중소기업·대기업 임금격차,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조기퇴직 등을 바꾸지 않는 한, 안정적이고 고수익을 보장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한 청년 실업과 청년의 경제적 미래에 대한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49.4세로 집계됐으며, 해당 직장에서 근속한 평균 기간은 15년7개월이었다. 50세 전후로 조기퇴직을 당하면, 자영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고, 자영업에서 실패와 노인빈곤에 직면하기 십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또 결혼 자체가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가 만연한 재벌대기업 중심의 전속적 하청구조에서는 노동자의 인적자본이 축적되기도 어렵고, 기업은 조기퇴직을 강요할 유인에 빠지기 십상이다. 경제력 집중의 해소와 시장에 실질적 경쟁을 도입해야 전속적 하청구조도 개방적으로 바뀌고, 기업의 경쟁력에 인적자본이 중요해진다. 이런 개혁을 통해,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정년까지 근속하면 기업연금과 국민연금으로 노후 빈곤에 떨어질 걱정이 없어지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초저출생 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나아가 자영업, 노인빈곤, 양극화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초저출생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없는 게 아니다. 기득권에 반하는 개혁이 어려울 뿐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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