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인생 전부였던 할머니…18살까지 함께 자”(인생84)

김지은 기자 2024. 1. 2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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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채널 ‘인생84’ 화면 캡처



‘인생84’ 기안84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기안84는 25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인생84’에서 고향인 여주 계신리를 찾아 할머니를 회상했다. 그는 “아빠가 수원으로 갈 때 할머니가 따라와서 나도 키워주셨다”라며 “당시 내게 할머니가 전부였다. 엄마아빠에게 혼나면 할머니가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이어 “밤에 혼자 자는 게 싫어서 18살까지 할머니랑 같이 잤다. 고등학생인 나의 걱정이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떡하지?’였다. 난 따라가려고 했는데 신기한 게 내가 성인이 될 때 돌아가셨다”라며 “그때 할머니가 20살에 시집을 가도 늦은 것이라고 했다. 요즘엔 28살에 결혼해도 빨리 갔다고 하지 않냐? 당시엔 꽃 같은 나이의 처녀들이 시집가서 시댁으로 왔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고 자녀를 길렀다”고 전했다.

또 “수원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방학이 되면 계신리로 연수를 왔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예전엔 계신리에 버스가 하루에 6~7대밖에 없었다. 한번 놓치면 3시간이 빈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면 어르신들이 준비하고 미어캣이 된다. 일을 하면서 저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뛰어가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계신리에서는 쌀을 키웠다. 참외를 키우는 분도 있었다. 딸기를 키우는 분은 통장에 1억 원씩 있다고 했다”라며 “닭도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 알을 낳아서 귀했다. 돼지나 소는 잔칫날에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산리의 키즈들은 비료 포대를 타고 놀았다. 보통 눈이 쌓여야 타지 않냐? 그런데 우리는 눈이 없어도 비료 포대를 타고 놀았다. 눈이 쌓이지 않았을 땐 엉덩이에 돌부리나 나무가 걸리면 비료 포대가 찢어지고 엉덩이가 다친다”고 말했다.

김지은 온라인기자 a05190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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