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선거제

기자 2024. 1. 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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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이 코앞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당공천절차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선거제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거제는 선거법에 확정되어 있지만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에 따른 유불리나 현행 선거제에 대한 거대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후보자나 정당이 경기장이나 경기 규칙도 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총선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에 해당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는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할 일꾼을 뽑는 것이다. 이만큼 중요한 나랏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중차대한 일에 정작 일꾼들이 잇속을 재느라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적으로 주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이자 주권 행사의 핵심적 수단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가뜩이나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창피한 일이다.

그래도 총선 자체를 피할 수는 없을 터이니 이참에 국민들은 어렵사리 맞은 주권 행사의 기회를 허투루 날려서는 안 된다. 국민이 선거제로 장난치는 거대정당들을 심판하는 데에도 국가기본법인 헌법이 정한 원칙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우선 총선을 일꾼만 뽑는 선거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총선이 ‘총’선인 이유는 한꺼번에 일꾼을 뽑아 국회 다수정파를 정하기 때문이다. 선거의 성패는 일꾼들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그 일꾼이 속한 정당에 달렸다. 의회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로 성격이 변모한 근본 이유이다. 아무리 인격과 능력이 출중한 인재라고 하더라도 교섭단체를 꾸릴 정도의 세가 없는 정당 소속이라면 일단 최우선의 선택으론 곤란하다. 300명의 합의제 기관인 국회의 성격 때문에 단기필마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일꾼이 속한 정당이 어떤 비전과 자질을 가졌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본권과 일상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직도 선거구 획정을 미루는 거대정당에 대한 심판에도 진중하면서도 입체적 평가가 필요하다. 둘 다 잘못했으니 그놈이 그놈이라고 몰아치다가는 엉뚱하게 제일 나쁜 정당을 밀어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제일 나쁜 정당은 어떤 당인가? 국민을 가장 업신여기는 당이다. 총선 일정을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은 양대 정당이 매한가지지만 그 원인이 다르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당명에 어울리지 않게 다수 국민보다는 소수가 선호하는 선거제를 추구한다. 전국을 지역 기준으로 쪼갠 다음 지역별 1등만 뽑는 걸 고집한다. 그 결과 국민의 과반수가 자신이 지지하는 일꾼을 국회에 보내지 못한다. 이 당은 이런 결과는 1등 못한 루저들을 선택한 국민들 탓이란다. 이런 심각한 대표성의 흠결을 치유하기 위한 비례제도 아예 없애버리거나 1등 많이 하는 정당 중심으로 배분하는 병립형을 주장한다. 더 심각한 것은 준연동형 선거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 선거제가 유지된다면 위성정당을 또 만들겠다고 협박한다. 결국 2등 이하를 지지한 국민들도 모두 루저로 만들어버리는 선거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표방하는 우리 헌법정신에 가장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가? 집권당은 선거제 외의 주요 정책들, 예컨대 검찰국가로 민주공화국을 퇴행시킨 점이나 노란봉투법이나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건의하는 등 국민 여론 외면에도 앞장서 있으니 이런 점도 놓칠 수 없다.

원내1당인 민주당도 선거제 혼선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총선 의석은 자선사업이 아니라면서 자기들이 따놓은 당상 정도로 여기는 반민주적 발상은 여당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 당에는 민주공화헌법의 기본정신에 따라 국민대표성을 조금이라도 강화하는 선거제를 지지하는 일꾼들이 있어 다행이다. 늦었지만 이들이 당론을 선도하여 헌법이 명령하는 선거제를 속히 확정하고 국민 대표성을 강화하는 총선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사족 하나를 덧붙인다. 시민사회에서 제안되는 비례연합정당을 유사위성정당이라 단정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굳이 외국 사례를 들 것 없이 교섭단체를 구성해야만 유의미한 의회활동이 가능한 국정구조에서 다양한 정파들이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연합하는 것은 다원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 권리이다. 위성정당은 선거제의 맹점을 피하려 정당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꼼수이기에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비례연합정당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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