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누구를 위한 농업안전보건센터 폐업인가
대학생 때 농활에서 간호대생 인기는 최고였다. 혈압과 혈당체크를 하고 관절을 풀어주는 맨손체조를 알려주는 정도였어도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줄을 섰다. 당시에도 전자 혈압계 정도는 갖추고 있는 집이 있었지만 간호대생들이 수동식 혈압계로 척척 팔에 감고 청진기를 대는 것만으로도 전문 의료인을 만난 것처럼 좋아하였다.
평생 농사지은 농민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으로 깔고 속병 한두 가지는 안고 산다. 농업은 재해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쪼그리고 구부리는 자세가 많아 근골격계 질환이 심각하다. 농기계가 엎어지거나 몸이 빨려 들어가 신체가 손상되는 재해도 잦다. 여기에 온열질환과 안질환이 많으며, 농약중독을 비롯해 먼지, 축산 가스 흡입 등으로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비율도 높다. 아예 진폐증처럼 ‘농부폐증’이라는 병명이 있을 정도다. 근래 농민들이 우려하는 질병은 정신질환으로, 형편이 안 풀리니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심한데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 여전해서 적극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정 직업군에 걸리는 ‘직업병’처럼 농업에는 ‘농부병’이 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투쟁의 성과로 ‘녹색병원’이 설립되고 강원도의 공공의료원들이 진폐병동을 운영하지만 농어민들을 전담하는 의료기관은 없다. 이는 농작업이 유발하는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연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에 농민들의 줄기찬 요구로 2013년 농업안전보건센터(센터)가 농식품부 주도로 전국 대학병원 7곳에 들어섰다. 충남권역의 단국대병원 센터는 ‘농약중독’ 연구에 집중하고, 조선대병원은 전남권역의 거점이면서 ‘무릎관절’ 분야를 맡았다. 경상대병원은 경남권역에서 ‘상지근골격계질환’ 연구에 집중하며 팔을 들어 올리는 작업이 많은 과수농민을 연구해 왔다. 강원권역의 강원대센터는 ‘허리질환’에 특화되었고, 제주대병원 센터는 ‘작업 손상’ 연구에 집중했다. 호흡기와 온열질환 전담이었던 센터 2곳이 운영을 멈췄지만 5곳의 센터가 10년을 꿋꿋하게 버텼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농민들을 성별, 연령별, 작목별로 나누어 추적연구(코호트)가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의료전문가의 농촌 현장을 관찰추적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질환별 표준 예방법과 교육법 등을 개발하여 보급에 힘썼다. 일례로 경상대 센터는 ‘트로트 체조’를 개발해 지금은 ‘실버체조’로 유명해져 도시의 노인들에게도 유용하다. 시범 마을로 의료진이 찾아와 기초 진료와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암을 발견한 주민도 있으며 진통제 오남용을 발견해 의료 사고를 막기도 했다. 농민들, 특히 여성농민 특수검진을 맡아온 센터의 존재는 든든하였다.
이런 농업안전보건센터의 1년 예산은 15억원. 1곳당 3억원 정도다. 사명감을 지닌 이들이 뼈를 갈아 넣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2021년에는 겨우 6억원을 쥐여주며 숨통을 좼다. 2020년에는 ‘농업안전보건센터 내 농업인 정신건강 분야 도입’ 필요성을 농진청이 제기해 정신상담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느닷없이 기재부가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센터 모두 폐업했다. 농촌진흥청의 농업안전예방사업과 겹쳐 효율성이 없다는 명분이다. 농업안전교육이야 농진청이든 농업안전보건센터가 하든 매한가지라 본 것이다. 하지만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농민·농업을 연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깟 체조동영상이야 아무나 틀면 된다는 정도로 보는 것이다. 어차피 스마트화에 따른 ‘무인화’가 한국 농업의 미래이니 ‘농민 따윈 필요 없어!’인가?
농업안전보건센터에서 제작한 농업인 트로트 체조를 따라 해 보았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에 맞춰 짠 체조는 농민뿐 아니라 거북목과 손목질환이 있는 내게도 딱이다. 작고 약한 이들을 향한 ‘무조건’의 사랑은 이토록 모든 이에게 유용하건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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