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AI보다 더 위험한 ‘기후’
1970년대 흑백TV로 연속극을 함께 보던 할머니는, 아까는 이 남자와 살던 저 여인이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린 드라마 속 현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셨다. 2000년에 휼렛패커드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방한하여 했던 연설을 기억한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인터넷을 수돗물처럼 쓰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벽돌 휴대폰을 들고 다니던 때라 인터넷과 수돗물을 연관지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예상을 넘어 인터넷은 이제 수돗물이 아니라 공기처럼 우리 삶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되었다. 보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만난 여인이 옛날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지구 반구처럼 동그란 외벽 전체로 영상을 보여주는 공연장 ‘스피어’도 새로웠지만 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에워싼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아우라’라는 이름의 여성 용모를 한 로봇이다. 관람객들에게 무엇이든 질문하라면서 질문자와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 아우라의 얼굴에는 표정이 있고, 괴상한 질문을 던진 사람은 약간 책망하듯 바라보며, 옆에 서 있던 보조원과 무례한을 소곤소곤 욕하는 모습을 보고 아우라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를 질문하려던 손을 내려버렸다.
짧은 일정으로 처음 찾은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함에 시골쥐 심정이 되었고, 스마트가전 안에서 대활약 중인 우렁각시들이나 자율주행 모빌리티나 건설기기들을 보자니, 앞으로 내 손자는 ‘어머 할머니, 어떻게 사람이 운전을 해요?’라며 나를 놀릴 것 같았다. 굴착기 제조업체가 무인 건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거듭나고, 장애를 해소하는 인공기기들을 창조해내며, 하늘로 날아다니는 차들을 보자니 CES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인류가 가진 문제를 인공지능(AI) 기반 기술로 해결하기 위한 경연장이자 미래 사회의 모델하우스 같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물에 스며든 AI란 전기 먹는 공룡들인데,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시대에 그 많은 에너지는 어떻게 충당할까?
지난 15일부터 개최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대규모 연산으로 작동되는 AI 시대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므로 에너지 분야에서 획기적인 돌파구 없이는 AI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며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원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AI의 자발성(?)을 제어할 윤리적, 법적 규제도 필요하다. 그만큼 AI는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럼에 참여한 학계·재계·정부기관·국제기구 관계자 등 1490명 중 66%는 AI보다 ‘극한의 날씨’가 더 위협적인 글로벌 리스크라고 답했다.
이처럼 전 세계 리더들은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동시에 미래 기술을 둘러싸고 치열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과거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4·10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대편을 바라보지 말고 거대한 세상의 흐름을 읽어라. 상대를 죽이려는 경쟁 대신 혁신 산업으로 경제도 살리고 고단한 국민의 울타리가 되는 정책으로 경쟁하라. 너무 신박하고 창의적인 정책이 흘러넘쳐 고민 끝에 투표하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 꿈인가!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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