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07)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TV부조정실
신문사는 신문사라 하는데 방송사는 방송사라 하지 않고 왜 ‘방송국’이라고 할까. 일제강점기에 경성방송이 설립됐고 해방 후 경성방송은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이름이 변경되면서 영어 약칭으로는 KBS라고 불렀다. 정부조직은 실(室), 국(局)으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KBS는 박정희 정권의 국정 홍보를 담당하는 국영방송국이었다. 대학교에 소속된 대학방송국 같은 기관이었다. 그러다가 한국방송공사법이 만들어지면서 문화공보부에서 분리되어 1973년에 KBS가 공영방송이 됐다.
왼쪽 사진은 1971년 KBS가 공영방송이 되기 전의 서울중앙방송국 TV부조정실이고 오른쪽은 2023년 KBS TV부조정실(일명 ‘부조’) 모습이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카메라 투, 컷! 카메라 원, 스탠바이! 뮤직 스타트~”라고 PD가 외치는 곳이 TV부조다. 이 소리에 따라 스튜디오 카메라들이 움직이고 엔지니어는 화질, 음질을 조정(제어)하여 녹화방송을 하거나 생방송을 한다.
제작 완성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볼 수 있게 송출하는 곳이 TV주조정실(일명 ‘주조’)이다. KBS TV주조는 국가보안시설로 신관 건물 지하 2층에 별도의 철문까지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설이 12·12 군사쿠데타 발발 당일에 전두환 반란군들에게 장악됐다. 이날 정규방송은 전면 중단됐다. 반란군들은 왜 KBS로 출동했을까?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어떤 프로그램들이 TV부조에서 제작되고 송출되었을까.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공영방송(KBS, MBC)에서 폭도로 몰아 보도했다. 이에 분노한 광주시민들은 광주MBC 건물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KBS 9시뉴스 앵커는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이라는 멘트로 그날의 첫 소식을 앵무새처럼 매일 전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KBS 시청료(수신료) 거부 운동본부’를 1987년에 결성했다.
공영방송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대신, 약자의 편에 서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야 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모든 대통령은 자기 입맛에 맞는 자를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낙하산으로 앉혔다. 현 정부는 전기요금에서 KBS TV수신료를 분리 징수하여 공영방송의 골간을 흔들고 KBS는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두 장의 사진에서 아날로그 흑백TV와 디지털 칼라TV 방송장비의 현격한 변화가 한눈에 보이지만 지금까지도 변함없어야 하는 건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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